40대 초임 목회자들에게
40대 초임 목회자들에게
  • cwmonitor
  • 승인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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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달윤 목사/무궁교회

얼마 전 서울에서 40대 초임목사 두 분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영광스럽게 부임해 3년도 되기 전에 퇴출을 당했다. 한분은 1000여명의 교회, 한분은 300여명의 교회에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두 분에게 공통된 장로들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당회 전원일치로 “목사님은 우리교회에 맞지 않으니 교회를 떠나 주시오”하는 청천 벽력같은 주문이었다.
필자가 두 분을 각각 만나 공통된 말을 또 들었다. “목사님! 목회를 장로들과 같이 뜻을 맞추어 하여야 합니다”라고 장로들이 몇 번 건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장로들의 말을 무시하고 목사 고집대로 한다든지 아니면 집사나 권사들과 의논해 목회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본인들은 장로들의 뜻을 맞추어 했다는 것이다. 그럼 장로들의 뜻을 무시하고 한 적이 없나요? 하였더니 때로는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고집을 부린 적도 있었다고 했다. 장로들이 볼 때에는 때로가 아니고 거의 그렇게 한다고 보기 때문에 장로들이 단합해 배척한 것이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상대들의 생각을 잘못 읽었다는 말이다. 아마추어가 자기 목회철학을 실현하려는 데서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또는 제직회시에 집사, 권사들에게 발언권을 줘 자기목회를 관철시키려 의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장로들의 정서를 무시하고 자기이상의 목회를 실현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성교회에 부임해 자기이상의 목회철학을 실현하려면 적어도 여건이 성숙되는 기간이 필요하고 당회의 신임을 받는 탄력이 붙어야한다. 당회의 신임이 없이 하는 일은 갈등과 분열과 후퇴와 고통과 배척을 초래한다. 어느 교회 새로 부임한 목사가 전임목사가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강대상을 치우고 강단을 리모델링을 했다. 교회는 그래야 부흥하는 줄로 착각한 것이다. 젊은 초임목사들의 오류는 그냥 밀어 붙이고 열심히 뛰고 새로운 일을 많이 하고 새벽기도회에 성도들이 좀 많이 모이면 목회가 잘 되는 줄 아는데 오산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목회는 고집으로나 권위주의로 단기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어떻게 하는 것이 섬기는 것입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섬김을 정의해줬다.

1. 인격적 섬김
1)상대 장로가 무식하고 가난하고 멸시천대 계층이라도 인격을 존중하고, 2)상대의 의견이 내게 맞지 않아도 모두 수렴해 다수의견에 동참하고, 3)상대의 칭찬할 곳을 찾아 칭찬해 즐겁게 해주고, 4)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절대하지 말고, 5)자기의 의견이 진리인양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편애하지 말며 그 어떤 조그만 한 것이라도 반대하는 것은 설득하고 설득하다 안 되면 보류하고 한사람의 당회원도 적을 만들면 안 된다.
그것이 당회원들에 대한 인격적 섬김이다. 장로를 칭찬하라. 칭찬은 위대한 괴력을 낳는다. 칭찬할 것이 없으면 그의 예배 시간에 조는 것을 칭찬하라. 예배시간에 마음이 평안해서 조는 것은 육신이 은혜 받는 시간이다.
당회는 당회원들을 섬김으로 지배할 수 있다. 당회를 지배하면 등나무뿌리를 잡고 목회하는 격이 된다. 당회만 마음대로 끌면 전체는 저절로 따라온다. 당회가 흔들리고 갈등하면 전체가 흔들리고 갈등한다. 가지를 잡고 목회하지 말라. 반드시 실패한다. 힘들어도 뿌리를 잡고 목회해야 평안한 목회, 생동하는 목회, 전진하는 목회를 할 수 있다.
2. 물질 또는 예로서 섬김
목사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돼야한다. 1)20세 이상 연배 어른들께 세배하는 것, 2)모임에 문 앞에서 신발을 돌려놓는 것, 3)연배 높은 어른 앞에 먼저 밥그릇을 갖다놓는 것, 4)내 돈 내어 식사 대접하는 것, 5)경우에 따라 선물을 하는 것, 등등을 물질 또는 예로서 섬김이라 하겠다.
목회자의 권위는 섬김과 정비례함을 알아야한다. 신발을 돌림으로 목사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며 오산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목회 철학이 아닌가! 섬김의 본을 보여 권위를 부여받은 목회자들에게는 교회가 순순히 따라온다. 권위주의로 명령하고 따라오라고 해서 현대인들은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또 걸리더라도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당회 의견을 한 방향으로 유도해 나의 목회 초점에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장로들이 다하는 것 같이 신바람이 나서 하지만 결과는 목사가 다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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