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돌아갑니다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 cwmonitor
  • 승인 2005.11.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세상에 나에 관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주오. 내 삶은 아름다웠고 감사할 뿐이었으니…”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 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마을에 뿌려주기를 바라오”
이 땅의 생은 감사의 순간순간이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떠나는 게 나의 행복이었다. 가난한 시골교회를 평생목회의 터전으로 삼아 소명을 불태웠던 한 목회자의 유언장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지난달 교회에서 철야기도 중 뇌졸중으로 소천한 전생수 목사(향년 52세 추평교회, 기감·충주동지방). 최근 전목사가 남긴 유언의 글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며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 귀천)라고. 시처럼 산 듯한 전목사의 생은 감사와 행복뿐이었다. 가난도 행복이었고, 척박한 목회지도 감사의 조건이었다. 그의 유언장을 보면 하늘에 둔 소망이 무지개 되어 펼쳐있다. 이 땅의 버거운 삶일지라도 감격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듯이.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아무런 배경 하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고 적힌 유언장은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유언장은 이어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 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 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푯말이나 비석따위조차도)”며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라고. 유언대로 전목사의 장기는 기증되었고 시신은 화장돼 고향 산야에 뿌려졌다고 한다.
20여년간 농촌목회에 전념하면서 오직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는 주위분들의 증언은 참 목자를 잃었다는 심정이 배여 있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맡겨진 소명을 불태웠던 전생수 목사의 소천은 안타깝다. 하지만 유언장처럼 살다간 그의 삶은 아름다웠고, 생을 달리하면서까지도 하늘의 감동을 이 땅에 남겨 두었다.
어두울수록 빛의 밝기는 더한다고 했던가. 그의 유언은 성직자로서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말일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목회자의 삶이 그만큼 성직이라는 본연의 자세에서 떨어져있다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세상풍조에 휩쓸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세인들이 보는 목회자상은 성직자라는 칭호보다는 직업인의 한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대형 건축물과 교인수가 목회성공의 기준으로 좌우되고, 교회세습이 만연해 있고, 호의호식만을 행복의 척도로 여기진 않았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이라는 역할에 한국교회는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선언 488주년. 혼탁한 세상에 맑은 생수를 맛본 것 같은 고 전생수 목사의 삶과 유언은 그래서 귀에 더더욱 와 닿는 것 같다.

jjk616@hanmail.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