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고로 인간(人間)은 소망(所望)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비록 부조리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기다림이 있기에 사람은 소망(所望)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빌미로 독거미 같은 인간들은 희망과 생의 의미를 미끼로 거짓 진리를 갖고 속이려든다.
수 없이 속았으면 도 여전히 소망을 갖는 것은 기다림과 함께 소망은 인간(人間)의 본능적인 모습이 아니겠는가.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종교(宗敎)란 인간소망의 투사요, 신(神)이란 인간 소망의 산물이다.’
그의 말이 내용적으론 맞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고,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산다 해도 소망이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소망의 대상은 신(神)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 신이란 자신의 소망을 성취(成就)하실 분으로 믿고 있는 실존(實存)으로서의 믿음이다. 그가 존재(存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作用)한다는 것이다.
7.희망(希望)한다. 고로 나는 존재(存在)한다. 소망(所望)한다. 고로 나는 절망(絶望)하지 않는다. 뭐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는가. 개인이 소망과 삶의 의미를 상실하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꿈과 의욕이 없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절망 속에서도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하는 그 끈이 바로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다.
8.주여, 비록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 차 있다 해도 보이지 않는 중에 당신이 살아 계심을 믿고 아이들의 순수와 부조리한 현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소서. 진정 당신께 사랑 받은 체험이 있다면 이런 세상에서 부당한 고통도 달게 받게 하소서.
그러나 종의 기다림이 희망이라는 것을 날마다 깨닫게 하소서.
저작권자 © 크리스챤월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