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 먼저 간 친구
마음의 창 / 먼저 간 친구
  • cwmonitor
  • 승인 2006.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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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세 살 많은 같은 지역 동료가 지난주에 췌장 암으로 말없이 세상을 떠났다.
세 자녀와 부인은 어떻게 살라고 먼저 가는지 그에게 따지고 싶었다.
석가가 어느 날 성문으로 나가 동문에서 노인(老人)을 남문에서 병자(病者)를, 그리고 서문에서 죽은 사람(死者)과 북문에서 수행자(修行者)를 만나면서 출가를 결심했다고 하듯이, 나도 요즘에 들어서야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왜 인생사고(人生四苦)라고 했는지 피부로 느끼며 순간순간 실감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는 일조차도 어렵지만, 목숨을 유지하고 사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죽는 일은 그런 일들과는 비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인생은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눈먼 소경이 생명(生命)이라는 등불을 지키고 있다가, 예고 없이 불어오는 바람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사라지는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삶이 아무리 고통(苦痛)스럽다 할지라도 스스로 먼저 죽으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죽음이란 단 1초라도 지체하지 않고 시간이 되면 나를 알아보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건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다른 일에는 열정(熱情)을 다하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 일에 대해서는 가장 관심이 적다는 것은 학문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곧 천문학이나 물리, 화학 등 과학은 중세 이전부터 연구 발전되어 왔지만,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은 19세기에 들어서야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조차도 현대적인 인간론은 이전과는 다르게 인간이 중심이 되어 신-인 관계를 따지고 있으므로 죄(罪)나 죽음(死)이라는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문화(現代文化) 자체가 이렇게 인간중심이 되다보니 도무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그렇게 철없이 살다가 이웃이나 가족 중에 아니 본인에게 예고 없이 하늘에서 출석통지서를 받고서야 잿빛 얼굴이 되어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 한다 해도 아무리 편리(便利)한 세상이 온다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신과 인간의 섭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히딩크 마법으로도 과학이나 진화되어가는 학문으로도 풀 수 없는 이 죽음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평소에 대비해야만 여유 있고 고상하게 마지막 그 순간(瞬間)을 맞이할 수 있단 말인가. 먼저 인생의 본향(本鄕)을 찾아야 한다. 사람은 죽음을 염두 해 두면서 생전에 다음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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