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한국민주화운동에는 평화주의적 전통이 흐른다
한국문화, 한국민주화운동에는 평화주의적 전통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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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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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제2차 폭력극복을 위한 목요신학마당을 개최했다. 이번 신학마당에는 박재순 목사가 발제자로 나서 "한국문화의 평화적 성격과 한국민주화 운동의 평화적 전통"을 주제로 강의했다. 박목사는 "평화는 전쟁과 폭력, 죽임과 파괴가 없는 삶의 상태일 뿐 아니라 고르게 밥을 먹는 일,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일이며 동시에 그러한 삶을 이뤄가는 과정과 노력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평화를 엄격한 관념이나 원리에 따라 규정하고 개별적인 행위나 특수한 상황에서 완력이나 폭력이 사용되었는가를 놓고 폭력과 비폭력을 가르는 것은 자칫 자의적이고 관념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목사는 이어 "세계교회협의회가 폭력극복 10년을 선포하고 평화의 실현을 위해 의욕적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쟁과 폭력이 난무한 현실에 살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한국문화의 평화적 성격과 민주화운동의 평화적 전통을 밝히는 것은 한민족이나 한국민주화운동을 이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결단과 헌신에 기여하고 세계평화운동에 동참을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한편 참석자들은 토의를 통해 평화가 약자나 패자들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박재순 목사의 글을 요약해 싣는다.

한국문화의 평화적 성격
함석헌은 △한민족의 건국신화에는 정복전쟁 이야기가 없다△한민족은 침략전쟁을 하지 않았다△한민족 사람들의 이름에는 온순함이 들어있다 등의 이유를 들어 한민족의 정체성을 "착함"에서 찾았다. 그는 착함을 사람, 우주, 하나님의 본성으로 보고 착한 한민족을 "우주 공도(公道)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으로 보았다. 이러한 한민족의 착한 성격은 한민족의 삶에서 자연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신선사상으로, 함께 살려는 평화주의로 나타났다. 한민족의 평화주의는 우리의 언어와 문화 곳곳에 배어 있다. 마을 수호신이 칼을 든 장군이 아니라 신랑, 신부를 상징하는 장승이라는 점, 한국의 대표적 전설과 동화에 복수이야기가 없다는 점 등이 이를 증명한다.

밝고 따뜻한 생명을 추구한 한민족의 삶과 정신을 올바로 드러낸 말이 바로 "한"(韓)이다. 한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사실 한의 말뜻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한은 하나이면서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큰 하나를 추구하는 한겨레의 삶은 자연생명 세계와 하나되고, 어울리며, 어우러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사상은 "온"(전체=큼=많음)과 "낱"(개체=하나), 선과 악, 삶과 죽음을 함께 본다. 이렇듯 한 사상은 조화의 사상, 평화의 사상이다. 낱으로서의 한이 있으므로 분열을 두려워않고, 온으로서의 한이 있으므로 전체주의의 질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의 사상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한사상은 조화와 원융, 역동적인 일원론을 담고 있다. 양극화, 분리, 대립, 배제, 갈등의 논리와 사고는 삶의 본질과 현실에 충실한 한민족의 기본정서와 사유에 낯설다. 한사상은 무한히 포용적이고 동화적이며 낙관적인 사고이다. 개체와 전체를 직결시키는 한사상은 서로 하나됨, 즉 평화주의를 내포한다.

한민족의 평화주의적 성향은 지배층보다 민중의 삶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역사 속에서 남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 엘리트들이 전쟁을 일으켜 죽이고 파괴했다면 민중들은 농사짓고 건설함으로써 평화를 이뤘다. 이들은 지배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면서도 지배자들이 파괴하고 더럽힌 공동체적 삶을 지탱하고 정화하는 구실을 했다. 오천년 민족사 속에서 평화적인 삶을 몸으로 익힌 민중은 비폭력 투쟁을 통해 민족과 인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할 저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평화적 전통
한국민주화운동은 평화주의 원칙을 지켜왔다. 일부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고 각목을 휘둘고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집단학살에 맞서 자연발생적 무장저항을 하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격렬한 민주화투쟁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군사적인 무장을 하거나 군사적인 저항, 테러행위는 없었다. 그대신 수많은 청년, 학생,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사르거나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정의와 평화의 길을 열려고 했다. 3·1운동과 4·19혁명을 걸쳐 1990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민주화와 평화의 제단에 바친 민주화운동의 전통은 고귀한 생명이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평화적 전통과 유산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3·1운동은 지도자에 의존하지 않고 전국 각처에서 모든 계층이 평화적으로 일으킨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크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1970년대 군사정권의 폭력에 맞서 민주화와 민중해방을 일으킨 이른바 재야민주인사들은 오직 말과 글로만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평화적인 저항을 했고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지켰다. 해방 후 50여년 동안 줄기차게 민주화운동을 벌여왔으면서도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지킨 것은 세계민주화운동사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식민지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생명평화철학이 피어났다. 생명평화철학은 함석헌에게서 주체적인 생명의지와 자연생태친화적인 평화주의가 결합되어 비폭력 저항의 평화주의로 나타났다. 함석헌은 개체로서 민중과 전체를 직결시킴으로 당파주의·집단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민중의 자연생명에 근거해서 역사와 영성(종교)을 포괄하는 함석헌의 생명평화철학은 80년대와 90년대 문익환, 김지하, 박노해로 이어진다. 그들은 모두 삶의 나락에서 생명에 대한 절대긍정을 하게 되고 생명에 근거한 공동체적이고 통합적인 평화철학, 공존과 상생의 평화사상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민중사상은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과 집단적 통찰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박재순 목사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마치고 한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을 지내고 기독교장로교 목사로 한신대, 이화여대,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숭실대 기독교대학원 등에서 강의를 해왔다.

저서로는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하나님없이 하나님 앞에", "열린사회를 위한 민중신학" 등이 있고 "사랑과 노동"(도로테 죌레), "창세기"(폰 라트), "주님"(로마노 과르디니) 등 10여권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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