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 / 발자취를 남기며
자연과 사람 / 발자취를 남기며
  • cwmonitor
  • 승인 2007.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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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 동(李 紀 東)목사 부여 수암교회

눈 쌓인 산이지만 정상을 향해 간다.
눈길에 토끼발자국도 노루발자국도 남아 있다. 나도 발자국을 남겼나 싶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내 발자국이 아니라 구두 발자국이다.
나는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구두를 벗고 걸었다. 나도 발자국을 남겼나 싶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내 발자국이 아니라 양말 발자국이다.
나는 양말도 벗고 맨발로 눈길을 걸었다.

비로소 내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발이 시리고 온몸이 추워 떨고 있었으나 나는 내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내 발자국이 남아 있으리라 적어도 눈이 녹을 때까지는…….

내 발자국을 남기기 위하여 구두도 벗고 양말조차 신지 말고 맨발로 걸어가자.
2007년 2월 2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다가 둥그런 해가 사과처럼 빨간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뿌려져 아이들과 뒷동산에 올라갔습니다. 눈밭에서 뒹굴며 놀다가 샘가에서 노루발자국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노루발자국을 따라가다가 토끼발자국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정상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가다가 잠시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소나무 가지에 쌓였던 흰 눈이 바람에 날려 설탕가루처럼 날아와 내 얼굴에 뿌려졌습니다. 아이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눈가루를 마시며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다고 했습니다.

나에게는 설탕같이 반짝이며 쏟아지는 흰 눈이 달콤하기는커녕 차가워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나는 토끼발자국을 따라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토끼발자국도 남아 있고, 노루발자국도 남아 있었습니다. 내 발자국도 남아 있을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발자국이 아니라 발가락도 없는 구두 발자국이었습니다. 나는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구두를 벗고 걸었습니다. 한 서너 발자국 걷다가 발이 시려서 눈길에 난 발자국을 보니, 내 발자국이 아니라 양말 발자국이었습니다. 나는 발이 얼기 시작했지만 양말도 벗고 맨발로 눈길을 걸었습니다.

비로소 다섯 발가락과 지문이 있는 내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발이 꽁꽁 얼어붙고 온몸이 추워 떨고 있었으나 나는 내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야! 호! 내 발자국이다” 하고 외치며 환희를 느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남을 따라서 흔한 구두 발자국을 남기지만,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외롭고 힘들어도 나 혼자만의 발자취를 남기어라.”
“아빠, 알았어요.”

우리 아이들도 맨발로 눈길을 걸어보겠다고 양말까지 벗는데, 감기나 동상 걸릴까 봐, 마음 약해서 말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내 언 발을 만지며 녹여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서로 젖은 발을 주물러 녹여주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시처럼 써 보았습니다. 내 발자취를 남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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