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멀지도 않은 지난 1974년, 군사 독재가 바야흐로 무르익어 갈 무렵, 연초부터 대통령긴급조치라는 것이 1호, 2호 계속해서 발동되었습니다. 독재체제용으로 제작된 소위 ‘유신헌법’을 철폐하자고 개헌발의만 해도 입건하겠다는 조치였습니다. 하늘 아래 사람의 입이라고는 독재자 박 아무개 밖에는 가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72년 유신초기에 국회는 이미 강제로 해산되었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꼭두각시 국민대의원 회의와, ‘비상국무회의’와 ‘유신정우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그런 것들을 가지고 온갖 요술을 다 피우고 있던 때에, 우리 나라는 참으로 장래가 없어 보였습니다. 가장 참담한 것은 언론의 자유가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신문 지면에서 사실보도라고는 바둑 기보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국민은 왕년의 정치인들에게도 기대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잠잠했고 과연 총부리 앞세우고 국권을 찬탈한 자들이 자행하고 있는 우민정치의 긴 어둠을 깨고 이 겨레에게 광명을 가져다 줄 사람은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개헌서명운동을 전개하다가 붙들려 갔던 목사님들(권호경, 김동완, 이해학, 허병섭, 이규상, 박창빈)이 있었습니다. 대통령긴급조치 4호로 입건되었던 소위 민청학련사건 연루자들(이직형, 안재웅, 정상복, 나상기, 서경석, 이철, 황인성, 이광일 외 다수)과 이들을 변호하다가 법정구속을 당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의로운 활동을 지원하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당시총무-김관석목사)와 그 산하에 조직된 인권위원회(초대사무총장-이경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년조직인 EYC와 학생조직인 KSCF가 있었습니다. 기독자교수협의회도 있었습니다. 또 무수한 의로운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 나라의 민주정체 수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자유언론을 외치다가 직장을 잃은 무수한 언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돕다가 출국을 당했던 오글, 시노트, 라벤더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산업전선에서 인권회복을 위해 일한 많은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전태일씨를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한 이들 곧 지명관, 오재식, 박상증 등 인사들의 업적도 컸습니다. 구속자들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시작한 목요기도회가 있었고, 이 모임을 주도한 김상근, 이해동 목사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의로운 활동을 지원하던 단체가 KNCC였습니다. 때로는 용공으로 누명을 쓰고, 때로는 내란음모의 총본부로 오인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총무가 구속되고, 때로는 사무실 전체가 오물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금년도 노벨평화상 대상자로 김대중대통령이 선정되었다는 발표가 있었고, 이 결정의 배경은 그가 탁월한 통찰력과 실천력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회복하고 특히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여한 것을 높이 기리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치 한국의 KNCC가 이 상을 받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협의체이므로 회원교단들 사이에 수시로 발생하는 의견 대립으로 끝없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국민을 민주화와 인간존엄과 통일의 대열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제 치하 받아서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