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갤러리 떼’(관장 신영수)는 6·25 60주년을 맞이해 6월20일까지 ‘전쟁과 일상’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 묻어난 수집품 300여점을 선보인다.
당시에는 군수 폐품으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군용 지프차 뒤에 스페어용으로 달고 다닌 철판은 꼭지를 달아 기름통 또는 쓰레받기로 활용됐다. 군용 드럼통은 가지런히 오려내 교통표지판으로 만들었다. ‘군용 파이버’라고 불리는 헬멧은 똥을 푸는 바가지<사진>로 탈바꿈했다.
미군이 버리고 간 얇은 미제 깡통은 활용도가 다양했다. 콜라 캔과 연유통은 철판지붕을 덮어 기와를 대신했다. 잘 다듬어 호롱불을 켜기 위한 작은 기름통 또는 낚시방울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또 석유박스로 만든 가구에는 깡통을 오려 만든 경첩을 달아 어려운 형편에서도 미적 감각을 뽐내기도 했다. ‘삐삐선’이라 불리는 군용 전화선을 엮어 채반과 휴대용 가방 등으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폐무기도 생활 용품이 됐다. 수류탄은 등잔이 됐고 중공군의 ‘방망이 수류탄’은 작은 절굿공이로 썼다. 기관총 탄피는 가게 입구 신발 흙을 털어내는 발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로켓 포탄 탄피로 쓰레받기를 만들고, 탄피로는 난로와 굴뚝을 만들었다. 실탄박스는 연장통이 되기도 했다. 벽을 뚫는데 이용한 구식 포탄은 모루, 미제워커 밑창은 모루방망이에 덧대어 사용했다. 총알은 휴대하기 편한 작은 침통이 됐다.
옷감이 귀하던 당시에는 군복 또한 유용했다. 색을 들여 평상복으로 입었고, 군용 천막천으로는 전대와 낚시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군용 탄피띠는 넝마주이가 멘 넝마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어깨끈이었다.
한편, 6·25 이후 반공은 생활 곳곳에서 자리잡았다. “북괴도발 못 막으면 자유 잃고 노예 된다” 등 당시 반공법에 의거, 모든 상품은 포장지에 반공을 강조하는 문구를 넣어야 했다. 북의 정책을 선전하는 삐라를 주워간 학생에게는 공책이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전쟁 물품을 재활용한 것 외에도 미국을 물리쳐 북조선을 돕자는 ‘항미원조(抗米援朝)’라는 문구가 적힌 중공군 관련 물품들도 선보인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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