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동화> 흙으로 만든 주먹떡
<인물동화> 흙으로 만든 주먹떡
  • 박은자 동화작가
  • 승인 2010.09.06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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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씨 편 1

 

  인물동화 연재를 시작하면서
스물 다섯 살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들을 가르친 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원을 운영해서 부자가 된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학원 운영자가 가난합니다. 가난한 사람, 그 중의 저도 한사람입니다. 제가 매일매일 만난 아이들은 유치원 아이부터 고등학생에 이릅니다. 일곱 살짜리 꼬마가 있는가하면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도 있습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이면서도 저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고 역사책을 읽게 합니다. 또 위인전도 읽게 합니다. 그런데 늘 아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생존해 계신,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는 우리 이웃과도 같은, 언제든지 달려가서 만나고 싶은, 아니 만날 수 있는 분들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많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가끔 아이들에게 제가 쓴 이야기를 읽어주고는 했습니다. 그 중에 에덴복지재단을 운영하시는 정덕환장로님 이야기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그 분의 이야기를 한 편의 동화로 만들어 들려주자 아이들이 금세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아이들은 그 분을 만나고 싶어 했고, 그분처럼 어떤 어려운 일 앞에서도 꿋꿋하게 일어나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인물동화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생각 뿐, 감히 작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하셨던 그 분은 제 글을 매 주 빼놓지 않고 읽는 독자였습니다. 그 분이 이런 주문을 하는 겁니다. “인물들 이야기를 아이들이 읽는 동화로 쓰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건 제가 꿈꾸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전화는 마치 하나님께서 저에게 채근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이재오 씨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그즈음 이재오 씨는 은평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면서 선거운동을 하시고 계실때였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재오 씨를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재오 씨는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요" 그 분은 한참 동안 이재오 씨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또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에게 창피하다고 말했고, 그래도 이재오 씨 같은 분이 있어 아들에게 덜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오 씨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다가 자신의 말솜씨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이야기를 제가 글로 써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화는 오래도록 제 마음을 잡아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정말 쓰고 싶은 분이 많았습니다. 닮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겁니다. 저는 우선 이재오 씨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재오 씨에 대한 자료를 읽는 동안 제 가슴 역시 그분처럼 뛰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고요. 다섯 편이 써졌을 때, 신문사 국장님에게 보냈습니다. 게재를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글을 써도 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사람의 글은 무엇이든지 실어주었던 임종권 국장님은 주저 없이 연재를 하겠다고 해서 저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제 글을 통해 아이들이 꿈을 꾸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길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난해도, 고난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남에게 주는 사람이 되기를 꿈꿉니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인물동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카가 상현이 편에 쑥절편을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아마 떡을 빼오자마자 조카는 아이를 곧장 보낸 것 같습니다. 떡은 아직도 말랑말랑한 것이 참 맛있습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떡을 먹으면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상현이가 놀라서 말합니다.

“어머나, 저걸 어째? 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네.”

상현이는 떡을 먹다말고 금세 울상입니다. 아니 상현이는 벌써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습니다. 순간 재오씨도 가슴이 콱 막힙니다. 보들보들하고 쫄깃쫄깃했던 떡이 갑자기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상현이가 재오씨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할아버지, 너무 불쌍해요. 저러면 병들잖아요.”

“그래. 이미 병들어 있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 저 애들을 도와주세요. 저 애들을 살려 주세요.”

재오 씨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상현이입니다.

떡을 얼른 먹지 못하고 있는 재오 씨에게 아내가 물 한 잔을 내밀며 재촉합니다.

“텔레비젼 그만 보시고 얼른 잡수세요.”

그러나 아무도 텔레비젼을 끄지 못합니다. 아이티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재오씨는 문득 오래 전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러니까 아홉 살이 되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재오 씨의 어린 시절, 그 때는 참 많이 배가 고팠습니다. 겨울에는 더 배가 고팠습니다. 눈이라도 내린 날은 눈덩이를 뭉쳐서 먹으며 놀면 되는데 며칠째 눈도 오지 않습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오 씨는 친구들과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붙어 앉아서 봄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봄이면 나물들이 올라오니까요.

봄이면 진달래도 피고, 찔레순이랑 칡순도 나오고, 먹을 것이 여기저기 있어서 그런대로 배를 채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도무지 먹을 것이 없습니다. 겨울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도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물이 나온다면 그거라도 매미처럼 매달려 빨아볼 텐데 겨울에는 그것 마저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양지쪽에 앉아 그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었지요. 배고픈데 웬 잠이냐고요? 너무 배고프니까 힘이 없어서 그렇게 졸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날들이 재오 씨에게 있었습니다.

너무나 배고팠던 시절, 지금 텔레비젼에 나오는 아이티의 아이처럼 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었지요.

“먹을 것이 있다.”

그 순간 모두가 눈이 반짝 빛나서 물었습니다.

“어디? 어디에 먹을 것이 있어?”

아이들이 모두 솔깃해서 그 아이 앞으로 몰려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손에 있는 것은 고구마나 누릉지가 아닙니다. 딱딱하게 굳은 떡도 아닙니다. 그 아이 손에 있는 것은 흙가루가 전부였습니다. 그 아이는 고운 흙가루를 삼베 천에 걸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에 개어서 말리더니 주먹떡이라며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하지만 재오 씨는 선 듯 먹을 수가 없어서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흙으로 만든 주먹떡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먹어봐. 얼마나 맛있는데.......”

그 아이는 흙으로 만든 주먹떡을 먹으면서 너무나 행복한 얼굴을 했습니다. 그러나 재오 씨는 그 주먹떡을 먹지 못하고 슬그머니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 아이가 죽자 어른들이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쯧쯧. 흙을 그렇게 많이 먹더니 흙이 창자를 찌른 게야.”

“창자를 찌르기만 했을까? 흙이 창자에 붙어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흙을 먹으니 창자를 아예 메워버린 거야. 그러니 살 수가 있겠어?”

그런데 오늘 텔레비젼을 보면서 행복하게 웃던 그 아이 얼굴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젼 속의 아이티 아이들도 흙을 먹으면서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광경입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오 씨는 어른이 되어서도 문득문득 흙을 먹던 친구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흙으로 만든 주먹떡을 먹지 못하도록 그 아이 손에서 빼앗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는 했습니다. 그 아이가 주먹떡을 먹도록 그대로 둔 것, 그것이 오늘 또 아프게 생각나는 것입니다.

재오 씨는 생각합니다. 어린 상현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이티를 돕는 대한민국이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재오 씨는 또 생각합니다.

‘진정 대한민국에는 배고픈 사람이 없는 걸까?’

순간 재오 씨는 또 목이 메입니다. 쑥절편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재오 씨가 쑥절편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떡을 해서 보낸 조카의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더 이상 쑥절편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재오 씨는 말합니다.

“여보, 떡이 남거들랑 옆집에 좀 나누어주지 그래요?"

아내는 배시시 웃습니다. 아내의 웃는 모습은 처녀 적이나 할머니가 된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습니다. 처음 만나던 때처럼 참 예쁘게 웃습니다.

“벌써 나누어 주었지요. 그러니 당신도 맛있게 드세요.”

그런데 상현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가난하다는 것은 참 나쁜 것 같아요. 더구나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픈 것은 비참한 것 같아요.”

재오 씨는 상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합니다.

“그래. 가난하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야.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무지 가난했는데,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프단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 배고픈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 배가 고파서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만 또 다른 배고픔이 있지.”

“또 다른 배고픔이요? 그게 뭐에요?”

또 다른 배고픔, 그러나 또 다른 배고픔에 대해 재오 씨는 어린 상현이에게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서민들이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은행에서 빌리지 못하고 이자가 비싼 곳에 손을 벌려야 하는 현실, 어엿하게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노숙자로 전락해가는 현실, 만 원도 되지 않는 상하수도 요금을 내지 못해서 빗물로 밥을 짓는 사람들, 전기료를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 어린 아이들을 방치하고 밤늦도록 일을 해야 하는 현실, 열심히 일을 해도 도무지 가난과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막막한 현실에 대한 배고픈 이야기를 어린 상현이에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상현이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재오 씨는 참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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