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인물동화> 따뜻한 눈빛
<박은자의 인물동화> 따뜻한 눈빛
  • 박은자 동화작가
  • 승인 2010.09.2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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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씨 편 3.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상철이가 태어나기 전에 광주에서는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거여요.

그 일로 인해 상철이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만약 작은 아버지가 있다면, 상철이에게는 사촌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상철이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더구나 상철이는 형제가 없는 외아들입니다. 그래서 상철이의 어린 시절은 참 심심했습니다.

심심하게 자란 상철이, 상철이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상철이는 작은 아버지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아버지 묘역에도 자주 갔고요. 그 뿐이 아닙니다. 묘소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 이야기를 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철이는 어렸을 때부터 광주민주화운동은 물론 이 땅의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들은 상철이 가슴에 늘 살아 있습니다. 그런 상철이가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 고등학생 대표로 참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작은 아버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작은 아버지는 신혼여행 가방을 던져놓고 곧장 거리로 달려갔다고 해요. 그런데 그 날 작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흘 후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구타와 총상으로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작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슬퍼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상철이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상철이가 오늘 민주화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왜 용서하지 못한 것일까요? 왜 서로를 끌어안지 못한 것일까요?

왜 아직도 서로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어른들은 집권 여당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수군거립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군.”
“그러게 말이야. 이 행사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야 할 행사인데 말야.”
“대통령은 그만두고 국회의원 한 놈도 보기 어렵네.”

그러면서도 여당 국회의원들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아니 올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식이 막 시작할 무렵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이 오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 사람을 향해 비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위에 서서 연설하시던 ooo 대표는 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온 그 사람은 아무소리 안하고 조용히 ooo대표의 연설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런 기념식 날은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면서 그날 우리에게 남겨진 교훈을 되새겨야 하는데, 계속 상대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대니 정말 상철이의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아무튼 기념식이 끝나고 서로가 인사를 나눌 때였습니다.

국회의원들은 그냥 나갔습니다. 상철이가 인사를 해도, 어른들은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들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상철이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한나라당에서 왔다는 그분, 다른 사람들에게 야유를 받던 그분, 이재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텔레비전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기가 민망해서 형식적으로 머리를 약간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뜻밖에도 상철이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 주었습니다.

상철이를 보고 웃어주는 웃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워 보이던지 그 분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아니라 모두가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님 같아 보였습니다. 그 분은 상철이가 관광버스를 타고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면서 배웅을 해 주셨습니다.

상철이는 그 분이 좋아졌습니다. 그 분은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날 그분은 몹시 쓸쓸해 보였습니다. 지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rm 날 그 자리에 혼자 오신 듯싶었습니다.
상철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그 분이 대학시절에는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데모를 했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감옥에 다섯 번씩이나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분은 부정한 방법으로 만들어낸 군사정권에 맞서 개인의 행복을 요구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친구들이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 때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젊음을 송두리 채 바쳤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된 지금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은 상철이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국회의원만 되면 부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국회의원인데도 가난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은 근엄하고, 무언가 힘이 많고, 무언가 으리으리하고, 그런데 그날 기념식장에서 만난 그 분은 다른 국회의원과는 몹시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상철이를 따뜻하고 정겨운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던 그 분, 상철이와 같은 고등학생들을 향해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시던 분, 아마 그 분은 상철이 모습에서 당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찾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상철이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밤 상철이는 인터넷에서 그 분에 관한 이야기를 검색해 보다가 그 분을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분의 정겨운 눈빛이 그리웠습니다. 다시 만난다면 가볍게 목례로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 숙여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상철이는 잠들자마자 꿈을 꿉니다. 그 분 이재오 씨를 다시 만나는 꿈입니다.

상철이가 이다음 어른이 되어서 그 분을 다시 만난다면 틀림없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드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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