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자의 인물동화> 꽁무니바람
<박은자의 인물동화> 꽁무니바람
  • 박은자 / 동화작가
  • 승인 2010.10.20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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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씨 편 6.

그 사람을 따라 다닐 때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가지고 있었고, 먹고사는 일에 그리 궁색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두 해가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젊은 부부에게 근심이 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서로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여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매일 매일 도시락을 들고 가게로 나갔습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젊은 부부는 도시락을 먹었는데, 더 정이 깊어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젊은 부부를 따라 다니던 아주 작은 바람, 그 바람을 사람들은 꽁무니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앞에 서지 않고 늘 뒤에서 살금살금 쫓아 다녔으니까요. 아주 많이 더운 날 그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는 앞으로 가서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혀 주고 싶기도 하지만 꽁무니바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늘 뒤에서만 등이며 목 줄기를 살그머니 만져주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일하다 말고 뒤돌아서 이렇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아주 시원하군. 정말 좋은 바람이야.”
그는 꽁무니바람에게 좋은 바람이라고 말해 주었고, 꽁무니바람은 마음속으로 그 사람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가게에 차 한 대가 돌진한 것입니다. 그 차는 가게를 부숴버렸고, 가게에 막 들어서던 그의 아내를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리를 아주 많이 다쳤습니다.

 운전자는 술에 취했었고, 더구나 보험도 들어있지 않은 차였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는 착한 그 사람의 치료비조차 대줄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죽고, 착한 그 사람은 치료비로 가게와 집을 잃어야 했습니다. 또한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꽁무니바람은 밥을 먹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있는 그 사람을 애써서 위로해 주었지만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꽁무니바람을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꽁무니바람은 용기를 내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건드리면 금세 바스러질 것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꽁무니바람은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 사람을 붙들고 울었지만 그는 꽁무니바람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굶어서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굶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너무 무서워서 그의 심장이 먼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아닐까요? 너무나 외로워서 어느 순간 그의 몸에서 흐르던 피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꽁무니바람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 뒤에 서서 다시금 땀을 식혀줄까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 서서 꽁무니바람은 출근하는 사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꽁무니바람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꽁무니바람 같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듯이 대문을 나서자마자 차를 탔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버스를 타러 가는 사람들도 꽁무니바람 같은 것은 필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꽁무니바람의 존재를 도무지 느끼지 못합니다.

꽁무니바람은 슬펐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에게 가지 않고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엔 나뭇가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곧 지루해졌습니다. 그래요. 꽁무니바람은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젊은 부부처럼 착하고 다정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작은 일에도 행복해 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꽁무니바람이 뒤에서 등을 밀어줄 때 금세 눈치를 채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이라면, 그래요. 꽁무니바람은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 오늘 아침 드디어 그런 사람을 만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 짐을 내놓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함께 거들어 주면서 활짝 웃는 사람, 아들이 취직했다고 말하자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해주는 사람, 맞아요. 이재오 어른입니다. 그 분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힘차고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지? 흠- 아무래도 바람에게서 나는 향기 같아.”

그리고는 뒤를 돌아다보는 것입니다. 순간 꽁무니바람은 그 분의 목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러자 또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늘은 바람이 참 좋군.”

그 분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까요? 아니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일까요? 한 번 그의 삶을 따라 가 볼까요? 그런데 그 분은 매일매일 꽁무니바람의 존재를 알아볼까요? 꽁무니바람을 느끼게 될까요? 꽁무니바람을 느끼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줄까요?

그런데 그 분이 이렇게 말하네요.

“아무런 직책도 없이 옷에 흙을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간다.”
아, 그 분을 ‘자전거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군요.

벌써 꽁무니바람의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건 누군가 지나가며 웃어주니까 싱글벙글 더 크게 웃는 그 분의 얼굴을 본 때문입니다. 순간 꽁무니바람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꽁무니바람은 이제 그 분의 뒤를 따라다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젊은 부부를 잊지는 않을 겁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젊은 부부는 언제나 꽁무니바람의 가슴에 살아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술을 마셨을 때는 절대로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 보험료를 내지 못할 만큼 가난하지 않은 것, 작지만 그런 것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아, 정말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자전거 아저씨 그 분이 우리 모두와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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