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르는 하늘의 노래 >6<
지상에서 부르는 하늘의 노래 >6<
  • cwmonitor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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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주 시인의 시계


1> 이 일은 뜻밖이다/꽃상여를 본 것은//눈에 들어오는 것은/상여의 걸음이다//한 곳에 멈춰 있는 듯/천천히 움직이네.

‘꽃상여’는 죽음의 환유이다.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아름답게 장식된 예사롭지 않는 죽음이며, 꽃으로 장식해 보낼만큼 아쉽고 고귀한 죽음이다. 상영의 걸음은 빨리 떠나지 않는 법. 남은 이들에게 꽃의 향기와 흔적을 남기는 것 또한 제의적이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죽음이며 어떤 죽음일까?’ 호기심을 자아내는 묘사의 여운이 느껴진다.

2> 꽃상여를 본 순간/그 꽃이 떠올랐다.//이 일은 우연이 아니라/누군가의 주시이다.//툇마루 한 켠에 서 있는/꽃의 걸음을 본 것은.

꽃상여를 본 것이 시적 화자가 본 현실의 사건이라면, 꽃이 떠오른 것은 내면의 세계 속에서 일어난 싱상과 초월의 이미지로서이다. 이제 시의 세계는 현상에서 사유의 세계로 점입되어 간다.

우연한 일이 아닌 ‘누군가의 주선’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눈뜨기가 곧 “꽃을 보는 일”이며 “꽃의 걸음”을 알아채는 일이다. 현상 세계의 죽음을 통해 사유되는 ‘꽃’의 이미지는 자연과 물리의 세계를 초월하는 묵시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피었다 질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꽃의 생애처럼, 인류의 생명을 위해 대속한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그의 죽음의 의미를 천착해 온 시인이 얻어 낸 시의 핵이다.
?
한 치 미동도 없이/움직이는 꽃을 보면//부끄러움을 가리고/죽음의 명분보다는//만장은 날마다 죽지 못한 변명이라야 했다.

죽음으로 생명 얻는 이치를 알기에 꽃의 움직임은 단호하다. 그리고 성서 고린도전서 15장 31절을 표기해 둔 것은 시의 의미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 해석을 저어하는 시인의 염려일 수도 있으나, 심원한 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시인의 배려이기도 하다.

직설적인 표현과 의식의 과잉으로 시의 영지를 축소시켜 왔던 기존의 종교시에 비해 선정주 시인이 보여 주는 새로운 형식과 심오한 내용은 종교시가 추구하느 형이상학적 세계의 진실을 해체시키지 않고 전체로써 보여 준다. 이는 곧 기독교시 창작에 있어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시조문학이 지향하는 현대적 의미의 변화와 개혁에 부응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지상에서 부르는 하늘의 노래

인간에게 말을 허여하신 것은 신의 은총이다. 보이는 물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심연까지 담을 수 있는 ‘존재의 집’인 언어. 그것을 가장 아끼고 다듬어서 쏟아내는 진액 같은 시의 언어야말로 지상의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반갑고 귀하다. 그러나 시의 언어가 담고 있는 감동의 진폭과 시의 깊이는 언어의 표층 구조 너머에 있다.

많은 시의 언어들이, 번뜩이는 표현의 재기들이 한낱 귀를 간지르고 지나가는 미풍처럼 날아가 버리고 시의 진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시의 언표를 넘어서 존재하는 ‘의미의 의기’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언어의 리듬만을 읊조리는 것은 귀에 남는 여운은 될지 모르나 가슴에 사무치는 감동은 줄 수 없다.

시조의 내면에 충일한 의미가 내장되어 있는 시. 하여 시조의 심층에 이를수록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길의 흐름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시조라야 생명력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생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처럼, 기실 세상에 태어난 한 편의 시, 한 수의 시조 역시 시인의 창조의 산물이기에 소중하다.
그러나 절대의 명품을 얻기 위해 무수한 작품을 깨뜨려 버리는 도공의 눈물이 시조를 낳는 가마 속에도 흘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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