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 용 주교


대한성공회 부산교구장


호국 기독교’라는 말은 ‘호국 불교’라는 용어를 생각나게 해서, 말하기도 듣기도 거북스런 용어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제가 ‘호국 기독교’라고 부르면서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부르는 것을 먼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보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야 이 나라가 얼마나 가겠는가”고 저마다 한숨을 쉽니다. 날로 늘어만 가는 망국의 징조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나라의 미래를 말하면서 ‘호국 기독교’의 소망을 말하는 것은, 나라를 살릴만한 재력을 교회가 갖추어야 하겠다는 말도 아니고, 이 나라를 역경에서 건져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정치가를 교회가 내놓아야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나라는 돈 가지고 건질 수 없으며, 신출귀몰한 인재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가 나라를 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전제하에서는, 기독교가 이 나라를 역경에서 건질 수 있는 ‘호국 기독교’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째로, 기독교가 이 사회에 도덕적 힘을 불어넣어 준다면, ‘호국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부정부패가 이 나라를 망치고, 쾌락 풍조가 이 사회를 지옥으로 던져 넣고 있습니다. 이 위난에서 나라를 건질 힘은 건실한 교회와 건실한 성도들의 도덕적 힘 뿐입니다.


둘째로,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겨레를 사랑하도록 만든다면 ‘호국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누가 겨레를 사랑하겠습니까? 이웃을 나의 정다운 이웃으로 알고, 그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있을 때 나의 삶이 보장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사람만이 겨레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에 ‘더불어 나누는 삶’이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에 산다고 하더라도, 가진 사람들의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생태와 누리는 사람들의 집단이기주의 작태는 누군가가 고쳐줘야 하는데, 폭력이 수반되는 혁명에 의하지 않고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가 ‘나누는 삶의 저력’을 보여주는 때 뿐일 것 같습니다.

셋째로, 기독교가 이 강토를 살만한 땅으로 보전하기 위해서 애쓴다면 ‘호국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치명적 토질오염이다, 치명적 수질오염이다, 치명적 대기오염이다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앞장서서 이 땅을 인간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아마도 이 일을 누구보다도 교회가 힘써 행한다면, 남들이 ‘호국 기독교’라고 불러 줄 것입니다.


넷째로, 만일 우리의 경제가 급전직하 침몰하는 비극적 상황에 돌입한다 하더라도, 이 겨레가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먹거리를 이 땅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을 교회가 개발하고, 또 그 실천 방안을 우리 사회 앞에 제시하고 지도해 나갈 수 있다면, ‘호국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사회의 민주역량과 인권 존중의 풍조를 키우는 역할을 기독교가 수행할 수 있다면 ‘호국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목적이 있지, ‘호국’을 위해 있는 종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의 분부대로 실천하던 교회는 당시의 썩어져 가는 사회를 건졌고, 망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웠습니다. 그러한 역사가 이 시대 우리 나라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