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시티'의 초록빛이 공연장 구석구석을 비추자 객석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초록빛 마녀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를 부를 때는 숨소리조차 멎었다. 낯선 초록 마녀의 첫 인사는 그렇게 환호와 감탄을 자아냈다.
지난달 31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초연 이후 9년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인 블록버스터다. 2004년 토니상에서 여우주연상, 무대디자인상, 의상디자인상 등 3관왕을 차지하는 등 그래미어워드, 드라마데스크상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총 35개 트로피를 거머쥔 만큼 작품성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이 뮤지컬의 국내 흥행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뮤지컬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20대 여성 관객이 멋있는 비운의 남자주인공을 내세운 사랑 뮤지컬에 관심이 쏠려 있다는 점을 걸림돌로 봤다.
또 국내에서는 가족뮤지컬의 인상이 강한 동시에 생각보다 줄거리에 대한 인지도가 약한 '오즈의 마법사'가 기반이라는 점, 외국 배우들의 영어 오리지널 공연으로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점 등도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할 요인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이 뮤지컬을 들여온 설앤컴퍼니 설도윤(53) 대표의 말마따나 개막 첫 주 관객의 반응을 놓고 봤을 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게 되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는 젊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샀다. 너무 달라 서로를 멀리한 두 마녀가 상대방의 아픔과 진심을 안 뒤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은 남녀노소 누구나 설득할 수 있는 주제다.
이밖에 수천개의 비눗방울을 뿌리는 버블머신, 무대 꼭대기에 설치된 소형 비행기 크기의 길이 6m짜리 드래건 머신, 10m가량 하늘로 치솟는 플라잉 등의 볼거리는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관객의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메인 테마곡인 '노 원 몬스 더 위키드'(No One Mourns the Wicked)', 두 마녀의 우정이 싹트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파퓰러' 등 200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을 받은 음악은 가장 큰 매력이다.
'위키드'는 미국의 동화작가 L 프랭크 봄(1856~1919)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58)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이미 그곳에서 만나 우정을 키운 두 마녀가 주인공이다.
한국 무대에 오르고 있는 '위키드'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프로덕션과 함께 세계적인 '위키드'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손꼽히는 호주 버전이다. 이 프로덕션에서 4년 간 호흡을 맞춘 엘파바 역의 젬마 릭스(28), 글린다 역의 수지 매더스(27)의 실력은 세계 수준급으로 관객들 모두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첫 아시아 오리지널 투어의 하나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그랜드 시어터에서 이어지는 공연이다. 마리나베이샌즈그랜드는 2100여석,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은 1700여석의 규모이나 6m짜리 드래건 머신 등 기존 무대를 그대로 옮겨냈다.
한글 자막도 정서에 맞게 번역됐다. 다만, 작품 콘셉트에 맞춰 초록빛으로 제공되는 자막이 다소 깨져 집중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점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퀼 형식이다. '스타워즈'와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양철나무꾼과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의 탄생비화를 엿볼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 내용을 숙지하고 관람한다면 이야기의 곁가지가 풍성해진다.
오픈런 형식으로 최대 11월까지 공연할 예정이다. 설앤컴퍼니와 공연제작사 CJ E&M 공연사업부문이 제작한다. 5만~16만원. 1577-3363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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