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아리랑, 中·北 이의제기"…폭로
"유네스코 아리랑, 中·北 이의제기"…폭로
  • 이연갑상임이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 승인 2013.01.17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김연갑 상임이사 = 문화는 의미 가치이자 목적 가치이므로 교환 가치나 수단 가치와는 다르다. 값을 매길 수도, 상품으로 유통시킬 수도 없다.

2002년 <월드컵> 경기 광장응원에서 확인했듯이, 선창자나 지휘자도 없이 꼭 맞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노래는 이리랑이었다.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한 대합창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아리랑 대합창이 가능했던 것은 그 탁월한 보편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저항·대동·상생 정신까지를 담아 기원의 마음으로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결코 상품 가격으로는 따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 아리랑은 무한 가치의 민족적 무형문화유산인 것이다.

그런데 2012년 12월6일, 프랑스 세계유네스코 제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한 상황과 등재 이후 각 지방자치 단체의 반응들에서는 아리랑을 가치가 아닌 어떤 가격으로 환치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세계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를 중심으로 한·중·일 간 ‘문화전쟁’(임돈희 문화재위원)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나, 3국에게만 1년에 1건씩만 신청하게 하는 제한을 둔 사실이나, 이번 아리랑 등재에서 중국과 북한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사실에서 그렇다. ‘문화’와 ‘전쟁’, 어디에 방점을 두든 이미 문화를 상품으로 보아 가치보다는 가격으로 판단하려는 의식에서 ‘문화전쟁’은 가능한 것이다.

국내 사정 역시 다르지 않다. 각 지자체마다 다른 지역 아리랑과 비교하는 우월적 표현을 쓴다든가 ‘3대 아리랑’과 같은 표현으로 자신들 만을 블록화하는 배타적 자문화중심주의의 폐단을 보였다. 물론 나름의 지역적 속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시설을 유치하는데 타당성을 검토했겠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예산을 쓰겠다는 것은 역시 진영논리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후자의 문제는 우리의 의지와 역량으로 조정과 협의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심각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對) 중국과 북한 문제는 다르다. 이번 등재와 관련한 보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이미 1개월 전 6개국으로 이뤄진 심사보조기구(Subsidiary body)에서 아리랑에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려 이변이 없는 한 등재가 이뤄질 수 있었을 텐데도, 문화재청장이 참석했고 예능자가 참가하여 심의 대상 종목을 실연했다. 이는 단적으로 최종 심의에서 중국이나 북한에 의한 변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비한 것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

물론 축하차 참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예민하게 바라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청장과 실연자가 참가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전례가 될 수 있어서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중·일 3국간의 문화전쟁 중인 상황과 중국과 북한이 보여준 상황은 충분히 아리랑 등재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다. 특히 중국이 아리랑을 고대사 해석 자료로 환치시켜 고조선 시대 한사군의 한반도 북부 평양경략설의 논리에 적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에서 이들의 반응은 예의주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어서 중국의 아리랑 자국 지정 문제를 정리하고, 이번 유네스코 등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살펴 자축(自祝)에서 현실적인 문제로의 전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1.중국 아리랑 지정, 치밀한 역사화 작업 결과

중국의 아리랑 자국 무형문화재 지정은 결코 그들이 내세우듯 ‘문화유산에 대한 전승과 발양(發揚)’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서 추정이 된다.

우선 하나는 동북공정 논리가 완성되어 가는 2007년을 정점으로 국내적 문화유산 정책을 강화했고, 유네스코 자국 유산 등재 등을 대폭 확대하였고, 그 일환으로 아리랑을 자국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여파로 우리의 무형문화유산 정책과 아리랑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유네스코 <아리랑상 Arirang Prize> 시상 제도를 폐기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중국이 자국 국명을 쓰는 제도의 신설을 밀고 들어와 기존의 시행 제도를 변경하거나 폐기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리고 2009년에는 인터넷 백과사전 바이두(百度) 등에 아리랑 역사 등을 전면적으로 게재하였다. 이어서 바로 문제의 ‘아리랑타령(阿里郎打令)’을 성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 해에 정선아리랑이 유네스코 신청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상의 2007년으로부터 2009년에 있었던 세 가지 상황 간의 상관관계는 앞으로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연으로 보기에는 석연치가 않다. 하여튼 중국이 성급으로 ‘아리랑타령’을 지정했다는 사실은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주목해 보기로 한다.

“아리랑타령은 중국조선족의 대표적인 민가이고 다종다양한 ‘아리랑’으로 하나의 가요집합체를 이루고 있다. ‘아리랑’ 가요집합체의 내포에는 ‘아리랑 고개를 넘는 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아내를 버리고 떠나는 남편에 대한 미움 그리고 산을 넘으면 닿을 듯한 아름다운 미래와 생활에 대한 염원 등이 망라되고 있다. 조선족의 내심세계를 생동하게 그려낸 이 타령은 선율이 명쾌하고 우아하고 감동적이며 애절한 감정이 특징적이다.” (『연변무형문화유산화첩』)

위의 인용문은 중국 연변주문화국이 2011년 10월 발행한『연변무형문화유산화첩』60쪽 성급 ‘아리랑타령’에 대한 해설 부분이다. 이 아리랑타령을 성급으로 지정한 2009년은 앞에서 살폈듯이 우리 문화재청이 ‘정선아리랑’으로 신청하려다 유보시킨 해이고, 이 자료집이 간행된 시기는 중국이 아리랑을 국가급으로 지정한 사실에 대해 우리가 동북공정 논리의 확대 적용이라는 이유와 유네스코 등재를 전제로 지정한 것이라는 비판이 고조된 시기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아리랑타령’ 지정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첫째는 이 지정 자체를 당시 우리가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구자들도 몰랐거나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당시 이에 대해 우리가 문제를 삼았다면 2년 후 국가급 아리랑(阿里郎) 지정은 방지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둘째는 ‘아리랑가요집합체’라는 것은 남북한의 표현인 ‘아리랑군(群)’으로 보아 중국동포사회에서 불려지는 모든 아리랑, 즉 분단 이전 역사공동체 시절 함께 불렀던 아리랑을 포함한 것이 된다. 그러나 ‘조선족의 내심세계’라는 표현으로는 중국동포들이 부르는 <기쁨의 아리랑>·<장백산 새아리랑>·<연변아리랑> 등 20여종의 창작 가요로 볼 수 있다. 만일 후자라면 우리는 오히려 이에 대해 찬동해 주어야 할 것이나 후자는 아닌 듯하다. 바로 이런 문제를 정부가 판단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이 또한 문제이다.

2009년의 이 미해결 문제는 결국 2년 후인 2011년 5월 23일, 중국 <제3차 국무원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 명록적 통지>에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阿里郞’(11-147호)을 국가급으로 지정하게 만들었다. 2011년 10월 발행한『연변무형문화유산화첩』에는 국가급으로 지정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리랑은 조선민족의 이주와 생활 속에서 유전되어 전해오며 불려온 중국조선족들 속에서 널리 전해 내려온 가장 대표적인 민요이다. ‘아리랑’을 중복해서 부르는 것이 특징인데 선율이 유창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평온하며 아름다운 특성을 지니고 있는 바 중국조선족들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조선민족의 이주와 생활 속에서 유전되어 전해오며···”라고 한 데서 이 아리랑은 역사공동체 시기 함께 불렀던 아리랑임을 밝혀, 조선족 만의 창작 아리랑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민요’ 또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라는 표현은 여러 아리랑 중에서도 본조아리랑임을 알게 한 것이다. 조선족들 중에서 정선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 그리고 밀양아리랑을 모두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러한 사정이라면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중국이 ‘아리랑타령’을 성급으로, 본조아리랑을 국가급으로 구분하여 순차 지정했다는 사실인데, 이는 매우 조직적인 준비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한다. 둘째는 조직적인 준비라는 점에서 중국의 지정이 일반적인 목적과 같이 순수하게 전승만을 위한 지정일까를 의심을 하게 한다. 왜냐하면 본조아리랑은 우리의 <월드컵> 광장응원에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바 있고, 북한에서는 10년째 본조아리랑을 주제로 한 <아리랑축전>을 개최하고 있어 남북한을 대신해서 본조아리랑을 전승하기 위해 지정했다는 것은 변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그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우리가 성명서를 통해 비판했을 때의 반응이다. 2011년 7월 11일자 관영 <인민일보>와 <신화망>의 보도다.

“문제는 한국이 아리랑을 길거리 음악으로 방치하고 상관하지 않는 기간 동안, 중국은 이미 아리랑을 중국소수민족 전통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问题是在韩国将阿里郎作为路边音乐放任不管期间, 中国已经将阿里郎当成了中国少数民族传统)

한국이 아리랑을 제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자신들이 지정했다는 주장이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문면대로라면 빌미를 제공해 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앞에서 ‘지정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하였는데, 중국은 남북의 아리랑 상황을 자세하게 알고 있어 2004년 문화재청이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아리랑연구소>를 건립하겠다고 했다가 실현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한 말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지정하지 않은 것을 ‘방치’한 것이라고 한 것은 지나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본조아리랑은 제도적 지정을 받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남북한에서 거의 완벽하게 전승하고 있는 것을, 굳이 남북한에서 제도적 지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든다는 것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며 혈맹을 과시한 북한에도, 1992년 수교를 맺은 남한에 대해서도 유치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대부분 삶의 터전을 애초부터 중국 영토 내에 둔 다른 소수민족과 같이 조선족을 취급하는 것과 중국 한족(漢族) 93%, 전체 소수민족 0.7%, 이중 0.016%의 조선족이 부르는 아리랑을 남북한이 지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지나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이므로 중국의 아리랑 지정에는 분명히 저의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에 대한 심각성이 일반화 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일반인들은 중국이 ‘조선족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수시킨다’는 목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일부 학자는 ①과 같이 문화다양성 논리를 들어 문제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②와 같이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조선족의 입지를 이해하지 못한듯, 조선족 스스로가 요청하여 등재된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①“중국이 조선족의 문화를 중국 유산의 하나로 인정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단 한국인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아리랑에 대해 중국이 먼저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할 경우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중앙일보)

②“조선족의 아리랑을 중국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것은 다름 아닌 조선족이었다.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구매일)

등재 직후의 다양한 반응 중에 ①은 유네스코 등재가 자국 지정보다 더 우위적인 개념으로 보는 시각인데, 유네스코는 이후 아리랑에 대해 어떠한 지원이나 대 중국과의 갈등에서 조정의 기능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이 신청했기에 심사해서 그 요건이 충족되어 등재시켰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 등재가 이번 같은 자축 분위기였던 것은 이미 등재된 <강강수월래>나 <판소리>나 <가곡> 등의 13가지 등재의 예에서 보았듯이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 이유는 ‘중국 아리랑사태’로 인한 국민적 관심사였기 때문이지 결코 유네스코 지정 자체가 국내 무형문화재 지정보다 비중이 크고 경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뒤늦게나마 아리랑을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중국에 선점을 빼앗겼다고 보는 것이고, 동시에 이번 유네스코 등재로 그것을 상쇄했다거나 우위에 있게 되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아리랑의 ‘민족의 노래’라는 위상과 상징성을 중국 한족(漢族)과 공유할 수 있는가라는 자괴감이다. 역사상 조공국(租貢國) 관계로 얼마나 치욕을 겪어왔는가. 그런데 이 시대에 와서 아리랑을 조공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인가? 또한 어떤 민족이나 국가 또는 공동체가 ‘상징(象徵 symbolization)’을 창출하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가를 안다면, 그래서 상징은 곧 무한한 브랜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했다면, 중국에서는 되고, 유네스코에서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발언들은 아리랑의 민족사적 위상과 상징성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거나, 아리랑을 지역 토속아리랑의 하나로 인식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조선족의 정치적 자율성을 과신한 인식의 결과일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런 발언 배경을 짚어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뜻 본조아리랑의 탁월한 보편성과 현대사 속에서의 독보적인 정치적 기능성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닌가라고 추정해 보는데, 아리랑의 이런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같으면서 다르고, 옛것이면서 새것인 메타문화(meta culture)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이기에 여기서 중국의 저의를 가늠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려 한다. 중국의 바이두사전(百度事典)과 후둥사전(互動事典)에 제시된 여러 아리랑에 대한 배경설 중 하나를 소개한다.

“중국 한나라 초기, 반도에 네 개의 군현(郡縣)을 설치한 후에 대륙북방민족이 아마도 압제를 피해 강을 건너 이동을 시작했다. 이 고향을 등지고 떠난 민족이 관문 자비령(慈悲岭)을 두고 애통해 했으며 노약자와 부녀자, 어린이들이 도중에 병사하였다. 이러한 난민 생활 중에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전해지기 시작하여 산과 고개를 넘는 고통스러운 이주의 심적 토로가 이후 아리랑 곡을 조선반도 중부까지 전해지게 했다. 역사가들은 이 사람들이 조선민족이며 아리랑은 조선의 옛말 ‘낙랑’의 의성어라고 믿는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한군현)을 설치, 식민지로 삼았다는 소위 ‘한사군 낙랑군 평양경락설’의 유사 내용이다. 이것 만으로도 중국은 평양일대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더하여 아리랑이 한나라 지역에서 한사군의 하나인 평양일대에 두었다는 낙랑군 쪽으로 이주하며 부른 노래라고 하였다. 이는 전형적인 동북공정 논리로 중국 사전의 단순 인용문으로 취급 할 수 없는 심각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우려는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심사 과정에서 중국과 북한의 이의 제기에서 현실적인 문제임을 확인하게 된다.

2.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과연 자축만 할 일인가?

2012년 12월6일,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소식은 선거운동 와중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양한 매체가 보도했고, 나름의 논지를 담은 칼럼이 게재되었고, 이에 부응하는 문화재청의 사업안도 발표되었다. 특히 유네스코의 심의 평가도 매우 만족할 만 했다.

“아리랑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됐으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 주고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했다. (중략) 아리랑에는 대단한 다양성이 내포돼 있어 아리랑의 등재로 무형유산 전반의 가시성 향상과 대화 증진, 문화 다양성 및 인간 창의성의 제고가 이뤄질 것···.”

심의평가 중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 재창조···’란 표현은 어느 나라 어떤 노래와도 변별되는 특징을 짚어 낸 탁견이다. 아리랑이 우리 근현대사 격동의 순간마다 시대의 노래로서 저항하고, 때론 비아냥거리고 또 때론 상생을 부르짖으며 불러온 노래라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판소리나 강강수월래가 등재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국민적 자축 분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이 자축은 그리 흔쾌한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2년 전으로 돌아가 ‘중국의 아리랑사태’에 대해 복기(復棋)할 필요가 있다. 불현듯 2011년 6월, 중국 아리랑 지정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번 유네스코 아리랑 신청, 등재가 가능했을까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성명서의 요지는 “중국이 아리랑을 자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는데, 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신청을 위한 사전 조치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정부의 미온책과 중국의 과욕의 결과로 이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느낀다”라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국민적 관심이 일게 되어 2009년 이후 묵혀 두었던 아리랑 등재 신청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중국과 북한의 이의 제기, 어떤 내용인가?

아직은 자축 분위기일 수도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런 회의(懷疑)를 품게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번 유네스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아리랑 심사(첫날 27번째)에서 중국과 북한이 이의 제기를 했다는 사실과 이를 문화재청과 외교통상부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등재 관련 보도자료에는 ‘중국과 북한의 이의 제기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내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문화재청과 외교통상부는 중국과 북한이 세계 40여개국 위원들에 의한 심의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했다면 그 내용을 공론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측에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연구로 대응 논리를 마련해야 하고, 문제가 없다면 중국과 북한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하고, 그 이의가 터무니없는 억지라면 이 또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아리랑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 속에서 우리와 중국과 북한 간의 문제를 안고 왔고, 앞으로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청 전후, 그렇게 우려했던 북한과의 공동 등재 문제가 바로 그렇다. 아리랑조차 분단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문화재청과 외교통상부는 이를 해결하려 방안을 논의하기보다는 숨겼거나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되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또 전자든 후자든 이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다.

심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단서는 문화재청장과 예능자의 참가라는 의외성에서 감지되었지만, 직접적으로는 의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weekly 공감》2012년 12월19일자에서 학인되었다. 유네스코에 참석하여 아리랑을 부른 예능자를 인터뷰한 기사인데, <중국 측 심사과정서 이의 제기해 한때 긴장>이란 소제목을 달았다.

“아리랑 심사 과정에서 중국이 홀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순간 긴장했어요. 아리랑이 우리 것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덩치가 큰 중국이 반대를 하고 나섰기 때문에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거죠. 다행히도 서류심사 때 아리랑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을 끝낸 의장이 직권으로 중국의 억측을 제어했습니다.”

‘억측’, ‘이의 제기’가 무엇인지는 이 기사에 없다. 그러나 단순하게 넘길 기사 제목이 아니다. 자축 분위기에 문화부가 발행하는 간행물에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 주장을 기사화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또한 인터뷰 대상자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언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긴장’, ‘걱정’이란 표현에서 예사로 읽을 수만은 없었다. 이는 예상대로였다.

한 중국동포 전문가는 “이미 한국의 신청에 대해 북한과 함께 그냥 넘기지는 않는다는 얘기가 돌았고, 어쩌면 중국도 ‘조선족 민요’로 신청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중국의 대국 근성을 한국 공무원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11월5일, 6개국으로 구성된 심사보조기구의 아리랑 ‘등재권고’ 판정에서나 한 달 후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심의에서도 어떤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관계당국은 중국 상황을 모른다고 했고, “결과적으로 중국은 신청하지 않았지 않았느냐?”고도 했다.

그런데 한국유네스코는 실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것은 명칭 문제로, 정리하면 ‘중국이 우리에게 ‘ROK 아리랑’으로 한정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류문화유산 지정에서 ‘아제르바이잔 카펫 공예’가 종목명칭으로 논란이 있었다)

등재 대상을 ‘아리랑’이 아니라 ‘한국 아리랑’ 또는 ‘남한 아리랑’으로만 한정하라는 주장인데, 과연 중국이 우리에게 이런 발언권이 있는가? 이런 중국의 태도는 아리랑을 자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그 효력에 의거한 것이 아닌가? 자국 무형문화재와 변별하라는 주장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 주장의 수용 여부에 따라 우린 중국 측의 아리랑에 대한 국제적 지분을 인정한 것이 되고, ‘중국 아리랑’으로 등재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 된다. 또한 이런 중국 측의 반응에 대해 북한이 어떤 입장인가에 따라서는 북한도 그 지분을 요청 할 수 있어 아리랑은 분명하게 분단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북한과 중국은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 공동 등재가 가능하다는 것이 된다. (‘고구려 고분군’으로 중국과 북한이 공동 등재한 2009년의 실례처럼 말이다)

그런데 역시 북한이 이에 동조했다고 확인된다. 북한이 심의 과정에서 “우리도 매년 아리랑 대축전을 한다”라고 함께 격한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는 남한 만의 등재는 문제가 있다는 분명한 항의의 표시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지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참석자의 발언도 충격적이다. 내용은 중국이 “중국 아리랑의 역사가 더 깊다”라고 목청을 높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에서 살핀 바대로 ‘한사군 낙랑군 평양경락설’의 핵심으로 사전(辭典) 내용 그대로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동북공정 논리의 유네스코 무대에서의 주장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의 노림수는 아마도 이런 국제무대에서 동북공정 논리를 공인받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갖게 된다. 대국은 어떤 경우든 국익을 우선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것도, 동북공정을 완수하려는 것이 목적 아닌가?

4.아리랑 남북 분단 만은 막자

결과적으로 중국과 북한의 문제 제기는 아리랑 등재에 변수가 되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사소한 일로 덮어 버릴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그 이유는 아리랑을 ‘한국아리랑’ 또는 ‘남한아리랑’으로 한정하여 위상을 훼손시켰고, 아리랑을 동북공정 논리 해석 자로 활용했고, 중국과 북한의 공조 관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부터 우리가 우려했던 바이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한 데는 우리의 실책에 원인이 있었다. 그 원인은 곧 관계 당국이 이번 중국과 북한의 이의 제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 이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2004년 국회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아리랑 지정문제에 대해 문화재청은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아리랑연구소>를 운영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두 번의 조시보고를 내고는 실현하지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큰 실책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예정대로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면 중국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고, 실현되었다면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신청도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은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당국의 인식은 바로 2011년 7월, 중국이 아리랑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자 “중국의 아리랑은 우리 아리랑의 아류다”라며 별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운운하며 중국에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고 한 문화부와 문화재청의 입장에서 다시 확인된다.

셋은 2002년에 시작해서 2007년까지 격년제로 3회째 시행되다 2009년 폐기가 확정된 세계유네스코 <아리랑상>의 시행을 포기한 것이다. 만일 이 상의 시행이 지속되었다면 우리의 무형문화유산 정책과 아리랑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과연 중국이 이미 국제적인 시상제도의 명칭으로 쓰는 ‘아리랑’을 자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유네스코 심의 과정에서 이번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역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넷은 2009년 정선아리랑의 인류문화유산 등재 신청 계획을 왜 2년이나 미루고 실기(失機)했는가이다. 이 시기는 2005년 우리가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로 선점하자 중국이 우리에게 단오는 자신들이 연원이 깊다며 강하게 반발하며 명칭을 바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용선제>(龍船祭)로 등재하여 신경전 중이던 시기였다. 그래서 중국 상황을 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었던 때이다.

2006년 <21세기경제>라는 매체는 “한국에 빼앗긴 단오절의 아픔, 문화유산 보호 강화의 계기로 삼자”고 보도했고, 2011년 7월 중국의 한 네티즌은 “한국의 단오제 등재에 대해 통쾌하게 복수했다”고 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런 발언을 확대해석하면 2009년 지정한 성급 ‘아리랑타령’에서 다시 가장 널리 알려진 본조아리랑을 독립적으로 국가급 ‘아리랑’으로 확대 지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이기에 앞에서 우리가 놓친 여러 아리랑 상황이 결국 이런 사태에 이르게 했음을 아프게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네스코라는 국제무대에서의 중국과 북한의 이의 제기가 사실이라면, 속된 말로 ‘딴죽 걸기’ 수준이라 해도 문제는 문제였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무형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신청할 것이고, 역시 중국과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유사한 논란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차원에서 관계당국의 2004년부터의 아리랑에 대한 실책과 이번 등재 과정의 문제를 공개하지 않은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누적된 실책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가 이런 사태에 이르게 한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국회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7월 ‘중국 아리랑사태’와 관련하여 김부겸·김을동·최종원·한선교·안형환·이철우·장병완·전혜숙 의원과 이인제 의원 등이 문화재청 관련 행사에 참석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검색어 재확인 수준이었고, 아리랑과 아리랑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려는 진지함은 확인되지 않았다. 국회는 KBS시청료 공방으로 관계법 개정도 무시한 상황이므로, 당연했다고 본다. 그래서 더 무겁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관계당국의 실책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문화유산과 문화전쟁의 ‘유산’과 ‘전쟁’이란 말은 동의어가 되었다. 문화유산이라 해도 국가 간에는 환가(換價)가 가능한 국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행위를 ‘소리 없는 전쟁’으로 표현했지만 이제는 문화도 ‘소리 없는 전쟁’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이번 태도에서 분명하게 재확인했다. 또한 아리랑(본조아리랑)에는 강한 정치성도 한 속성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무형문화유산 정책에서 북한과 해외동포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두어야 하고,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긴밀한 교류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과의 교류를 서둘러서 아리랑 분단만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관련 단체와 연구자들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제 자축은 끝내자 그리고 중국과 북한에 대한 대응 논리를 찾기로 하자.

【서울=뉴시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