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 사랑, 영화 '연애의 온도'
미시적 사랑, 영화 '연애의 온도'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3.03.12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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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애의 온도’
선남선녀 주인공들의 아름답고 로맨틱한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나 TV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헤어진 남녀의 온갖 찌질하고 궁상맞은 모습을 영화와 드라마로 본 적 있는가.

지난 연말 흥행에 성공한 지성(36) 김아중(31)의 로맨틱 코미디 ‘나의 PS 파트너’(감독 변성현)가 7년 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한숨 속에 사는 남자 ‘현승’(지성)을 통해 그런 모습을 살짝 보여줬다면, 김민희(30) 이민기(27)의 멜로 ‘연애의 온도’는 아예 대놓고 헤어진 커플이 연애 당시와 180도 달라진 모습들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이동희’(이민기)와 ‘장영’(김민희)은 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동료다. 3년 동안 사귀었지만 직장 내에서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후배 한 사람 뿐일 정도로 철저히 숨겨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헤어졌다. 특별한 이유도 없다. 늘 같은 이유로 싸우는 것에 지쳐서다.

한 직장에 근무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웃으면서 합의한다. “좋은 친구로 지내자.”

대범해 보이는 이동희나 쿨한 듯한 장영 모두 ‘왕소심 덩어리’에 ‘슈퍼 울트라 자존심 투성이’들이다. 분명 혼자 있을 때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상대를 그리워 한 그들이다. 하지만 차마 “미안해. 다시 시작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한다.

도리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처럼 상대에게 분풀이를 하며 마음 속 가득한 애정을 애써 감추려 한다. 이동희는 연애 시절 함께 썼을 노트북을 빌려갔으니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장영은 연애 시절 데이트할 때 쓴 돈을 빌려간 돈이니 내놓으라고 맞받아친다. 노트북을 박살낸 뒤 3만원 착불로 보내는 장영에게 이동희는 집에 남겨놓고 간 장영의 속옷부터 음식 찌꺼기까지 갖가지 물건들을 차곡차곡 한 박스 가득 담아 5만원 착불로 돌려보내 응수한다. 어쩌면 이런 모든 행동이 자신에게 사랑이 남아있고,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 행동들이 관객들을 어이없고, 황당하며, 아연실색케 하지만 불쾌하거나 욕을 하기보다는 아낌없이 “하하”, “호호”거리며 즐거워하게 만든다. 누구나 겪었을 실연의 경험과 그때 행동들, 아니면 끝까지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결코 드러낼 수 없었던 속내들을 여과없이 끄집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연애의 온도’는 사랑에 마침표를 찍은 관객들에게는 지나간 사랑을 되뇌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한창 사랑을 진행 중인 남녀에게는 사랑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며, 아직 사랑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 당장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하는 노덕(33) 감독이 5년 동안 준비해온 탄탄한 시나리오와 등장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속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색다른 시도 등 참신한 연출에 연기력을 인정받는 청춘스타 이민기, 김민희의 완벽에 가까운 호흡과 라미란(38) 최무성(45) 하연수(23) 등 조연진의 맛깔나는 연기가 더해져 영화 곳곳에 설치한 웃음코드들이 쉴 새 없이 터지고 간간히 가슴 찡한 울림이 퍼져가면서 어느새 한데 모여 공감과 만족의 대폭발을 일으킨다. ‘상남자’, ‘마초남’ 전성시대인 요즘 남성미가 다소 결여된 듯한 이동희에게 불만을 품는 남성 관객들도 있겠지만 후반부 이동희가 장영을 지켜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다면 진짜 남자의 자격이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느낄 수 있다.

21일 제이미 폭스(46), 크리스토프 왈츠(57), 리어나도 디캐프리오(39)의 할리우드 액션 ‘장고: 분노의 추적자’(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개봉하고 한 주 뒤인 28일 이병헌(43)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SF 액션 ‘지.아이.조2’가 개봉해 얼핏 대진운이 나쁘다고 생각하기도 쉽다. 하지만 이들과 장르의 차이를 떠나 작품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만큼 명승부가 기대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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