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비극, 을은 희극을 즐긴다…'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
갑은 비극, 을은 희극을 즐긴다…'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
  • 이재훈 기자
  • 승인 2013.07.17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탈선춘향전'
 "코미디를 우습게 보고, 낮춰 보는 풍토가 있는데 무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팩 제3회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탈선 춘향전'을 선보이는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61) 예술감독이 "코미디는 어려워요. 역사성과 인류학적 풍속이 녹아 들어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비극은 인류학적 풍속을 고려하지 않아도 연극이 만들어지지만 코미디는 마냥 웃긴다고 만들어지지 않아요. (미국의 유명 극작가) 닐 사이먼을 우리 식으로 하면 안 웃깁니다. 미국과 우리의 웃음이 다르죠. 코미디는 그 민족의 화법과 몸짓, 손짓 등 모든 것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인데 왜 코미디를 하위 장르로 보는지 모르겠어요."

1990년대 자신이 선보인 희극 '오구, 죽음의 형식' 관련 일화도 떠올렸다. "당시 공연을 보고 너무 웃다가 머리를 다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웃음을 유발했죠. 그런데 국립극단 배우들은 퇴장했어요. 원로들은 이게 왜 웃기냐고 하고."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 공모에 '탈선 춘향전'이 선정되자 누군가 말한 심사평을 꼬집기도 했다. "이번에 심사평을 들었는데 욕도 많고, 거침없다고 했더라고요. 누가 말했는지 몰라도 무식합니다. 본래 코미디는 거칠어요. 셰익스피어 작품 역시 40% 이상 욕이고 성적 농담이에요. 그럼 셰익스피어도 무식한 것인가요. 거친 데는 이유가 있어요."

비극은 '갑'인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희극은 '을'인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가진 자들은 울게 없어서 비극을 보면서 울고 즐기죠. 희극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즐기는 장르예요. 가진 게 없어서 웃기 위해 보는 거죠."

'탈선춘향전'은 부산 출신 작가 이주홍(1906~1987)이 1949년에 쓴 동명 작품이 원작이다. 공부는 하지 않고 여색만 탐하는 몽롱한 한량 '이몽룡'과 그런 그를 마음껏 끌고 다니며 조롱하는 '방자', 욕 잘하는 처녀 '춘향'과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유흥업소 마담 '월매' 등을 통해 황당한 고전 뒤집기를 선보인다. 광복 후 한국 연극 처음으로 재담극 양식으로 수백차례 공연됐고 시나리오로 개작, 영화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 연출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버전은 2006년 이주홍 탄생 100주년을 맞아 초연했다. "60년대 말에 마당극이 시작됐다고 알고 있는데, 1940년 말 부산에서 시작됐습니다. 부산에서 대박이 난 작품인데 왜 연극사에서 빠졌는지요. 서울이 지방 연극을 수용하지 않는 겁니다. 춘향이가 욕을 엄청나게 하는 작품이에요. 사회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근데 부르주아들은 이런 욕을 듣기 싫은 거예요."

2010년 '제1회 코미디 페스티벌' 당시 극작가 오영진(1916~1974)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를 무대에 올린 이 연출은 오영진을 근대 희곡의 시작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우리니라 코미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코미디 연구소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는 코미디 프랑세라는 문화 유산이 있어요. 우리 역시 우리 코미디가 있고, 세죠. 우리는 비극이 없는 민족이에요. 한국 연극사의 재인식이 필요합니다."

페스티벌에는 8월26일~9월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탈선춘향전'을 비롯해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14人(in) 체홉'(8월 17~22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조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 수사극 '안 진사가 죽었다'(8월 15~18일·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009년 대학로에서 주목 받은 '삼도봉 미스터리'(8월 21~25일·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7년간 33만 관객을 모은 '오아시스 세탁소습격사건' 시즌2(8월28일~9월1일·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도 참가한다.

'고전 그리고 재발견'을 내세웠다. 한국의 고전희곡·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과 외국의 단편을 통해 고전을 재해석한 한국형 토종 코미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공모로 접수한 80여편 중 16대 1의 경쟁을 거친 5편을 선정했다.

'14人(in) 체홉'은 극단 이안의 오경택 연출, '안진사가 죽었다'는 김시번 연출, '삼도봉 미스터리'는 김한길 연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권호성 연출과 김정숙 작가가 지휘한다.

이 연출은 "각 세대를 대표하는 분들을 고루 잘 뽑았어요. 비극은 억지로 눈물을 짤 수 있지만, 희극은 무대에서 안 웃기면 실패에요. 실력이 있는 극단이 코미디를 격상시키는 대반전이 필요하죠. '안진사가 죽었다' '삼보동 미스터리' 같은 동시대의 관점에서 전통을 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코미디가 필요합니다"고 설명했다.

김한길 연출은 "코미디라는 것은 웃기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시대적인 공감대가 있어야 진정한 웃음이 있어요"라면서 " 웃음과 함께 아픔을 담았으면 합니다"고 바랐다.

2010년 출발한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은 지난해까지 격년제로 열렸으나 올해부터 매년 선보이기로 했다. 한국공연예술센터 유인화 사무국장은 "1회 때보다 2회째 공연 횟수가 줄어들었음에도 수입은 37%나 늘어났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배우와 관객들이 어울릴 수 있는 행사도 준비된다. 연극배우를 대상으로 워크숍 '전통예술을 통해 보는 풍자와 해학의 세계', 참여 극단이 생각하는 국내 코미디 공연의 현황 등을 논하는 세미나 '2013 오늘의 코미디' 등도 연다.

행사 기간 대학로예술극장 시어터카페에서는 '코미디페스티벌 다시보기'를 주제로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벌'의 흐름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02-3668-0007

【서울=뉴시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