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과 이석기의 교훈
찰리 채플린과 이석기의 교훈
  • 남문현 부국장겸 정치부장
  • 승인 2013.09.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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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매카시즘(McCarthyism)의 대표적 피해자다. 영국출신의 세계적 희극인이자 영화가인 그는 2차 세계 대전후 전개된 혹독한 냉전시대 한 복판에서 구체적 근거도 없이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주 활동 무대였던 미국에서 추방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히틀러와 나치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던 영화 '위대한 독재자', 자본주의를 비판한 '무슈 베르두'를 제작한 뒤 미국 사회에서 뜻하지 않게 공산주의자 색출광풍인 매카시즘에 본격 휘말린 채플린은 수사당국의 노골적인 조사를 받는 등 상당한 압박에 직면케 됐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뒤늦게 그에게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여하며 사실상 사과와 오해를 푸는 조치를 취했다. 좌익성향의 진보주의자이지만 평화주의자인 찰리 채플린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떠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예술가로서 여전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체포동의안이 처리된 뒤 구속수감 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매카시즘의 피해자'라는 입장을 펴며 수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수사당국이 '내란음모 및 반국가단체 구성' 등을 자신에 대한 혐의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터무니 없는 '마녀사냥'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 의원은 그러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멈췄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항변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법원 유죄 판결전까지 모든 형사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이 의원은 현재 당연히 무죄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수사당국에 의해 밝혀진 그에 대한 혐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내란음모'혐의는 유신시대 이래 사실상 사문화됐던 것인데 30여년만에 재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안의 중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당초 수사당국에서 제시했던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 총기언급 등의 혐의에 대해 처음에는 “허위날조”라고 하더니 뒤늦게 모임사실을 인정하고 “총기언급은 농담이었다”는 등 오락가락 해명으로 신뢰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 역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수사당국에 의해 공개된 RO의 활동내역 녹취분만을 놓고 본다면 이 조직과 이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등의 혐의에 대해 명확하고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이 인정된다는 것이 일반적 여론이다.

새누리당은 물론 야당인 민주당과 정의당도 논란 끝에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찬성'당론을 내걸고 압도적 표차로 처리하고 법원도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 의원이 매카시즘의 피해자라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쉽게 동의 받을 수 없다. 드러난 혐의와 내용들에 대한 해명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다.

찰리 채플린이 시대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비판적 창작물로 인해 냉전시대 광신적 유물에 휩싸이는 정치적 희생양이었던 것이야 말로 진정 매카시즘의 피해자라 할 수 있지만 이 의원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과거 미국에서 불어 닥쳤다 사실상 무책임한 것으로 판명난 매카시즘 열풍처럼 광신적이고 맹목적인 ‘반공 분위기’에 내몰릴 만큼 성숙돼있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 의원이 주장하는 민주의의가 없었다면 결코 사면복권의 혜택도, 정당결성을 넘어 국회에 입성하는 수혜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의원은 통합진보당 주장대로 이번 사건이 정말 ‘진보정치인 학살극’인지 진실규명 차원에서라도 겸허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사에 적극 임해야 한다. 그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여당은 이번 사건을 절대 정략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그럴 경우 사안의 본질을 정치문제로 희석시킬 뿐 더러 정말 매카시즘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케 될 것이다.

당국 역시 철저하고 객관적인 수사로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수사과정에서 한치의 오점이라도 남는다면 당국은 ‘정치수사, 기획수사’라는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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