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죽여야 할까?
호랑이를 죽여야 할까?
  • 최효극 전국부장
  • 승인 2013.12.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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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4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사육사의 목을 물어 부러뜨리는 참사가 발생했고 며칠이 지나도록 사육사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원 100년 역사상 이런 참사는 처음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사육사의 쾌유를 빈다.

이번 사고는 공교롭게 몇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육사를 문 시베리아 호랑이는 호랑이 사(舍)를 수리하느라 임시로 여우 사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고 사육사는 26년간 곤충을 돌보던 곤충학 박사인데 올해 초 처음 맹수사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사육 시스템과 관리에 동시에 ‘누수’가 생기면서 안타까운 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맹수가 사육사를 문 경우 ‘재범’ 우려가 크다며 일부에서는 호랑이를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에버랜드 동물원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서울대 수의과대학 신남식 교수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맹수의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고는 호랑이의 잘못이 아니다. 호랑이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좀 무리다… 호랑이는 본능적으로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적으로 본다. 오래된 사육사이건 얼마 안 된 사육사건 마찬가지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한 맹수에게 사람을 공격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또 사람을 문 경험이 공격성을 더 강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JTBC의 여론조사에서도 ‘살려둬야 한다’ 70.2%, ‘재발방지를 위해 안락사 시켜야 한다’ 27.6%로 살처분에 반대하는 여론이 2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무한증식 본능을 갖고 있는 또 한 마리의 야수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탐욕(이기심)을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기 때문에 수많은 결함과 모순을 안고 있다. 초기엔 자본가의 탐욕을 제어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아동, 여성, 빈곤층이 극심한 과잉노동으로 고통을 받았다. 1833년 영국의 공장법은 미성년(13~18살) 노동자의 합법적 노동시간을 아침 5시30분~오후 8시30분까지 하루 15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후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정부의 개입을 통해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는 등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산업 혁명에서 다지털 혁명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경제적 도약은 자본주의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발생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공황, 노사갈등, 빈부 양극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차선책'으로 살아남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하고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자신만만하게 언명했다.

그러나 체제경쟁이 끝난 이후에도 자본주의의 모순은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금융공황은 여전히 경제를 위협하고 양극화는 더 심화돼 1대 99사회가 도래했다.

결국 '탐욕'은 맹수의 공격본능처럼 해소될 수 없고 끊임없는 '관리의 대상'으로 남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맹수에게서 공격본능을 없애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공격본능이 사라지는 순간 맹수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맹수(자본주의)를 그 본능(탐욕)때문에 안락사 시킬 순 없고 시스템을 통해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졸지에 해산위기에 놓인 통합진보당도 야수처럼 위험한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이석기 의원 등이 RO(혁명조직)결성과 내란음모 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주된 이유는 강령의 전문에 등장하는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 라는 구절 (정확하게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구절)이 우리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민중’이란 표현이 다른 계층의 국민을 배제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민중’이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표현이란 반론도 있다. 이외에도 강령엔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의식이 곳곳에 스며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선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맹수의 공격본능과 같은 진보당의 '사회적 본능'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갔으니 어떤 결정이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진보당은 이미 선거를 거쳐 국회의원들을 배출한데다 대통령 후보까지 낸 정당이어서 이 당을 지지했거나 지지하고 있는 유권자들은 지금 황당하거나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지지하는 정당의 강령을 꼼꼼히 읽어본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설사 강령을 읽어봤더라도 문제가 된 구절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걸 알아채긴 쉽지 않다. 또 정당이 강령을 철두철미하게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결국 유권자들은 정당에 속한 인물들의 됨됨이, 정당의 과거 행적, 그 정당이 어떤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지지여부를 선택했을 것이다.

진보당의 당내 선거를 둘러싼 폭력사태와 끝없는 내분, 탈당 도미노로 진보정치에 실낱같은 기대를 품었던 국민들의 시선은 이제 싸늘하게 변했다. 또 '종북 딱지'가 붙은 혐의들이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될지 모르지만 이제 환부를 도려내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에 갇힌 병든 호랑이를 굳이 죽여야 할까.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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