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치평론>지방선거와 세속화
<기독교 정치평론>지방선거와 세속화
  • cwmonitor
  • 승인 2002.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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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응 휘 / 피스넷 사무처장


“세속화”(Secularization)란 보통 성스러움의 퇴락과 신앙생활이 세속적으로 타락해간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보통 신학적인 맥락에서 세속화란 교회 혹은 신앙적 삶이 우리 삶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점차 밀려나고 있음을 묘사하는데 쓰인다.

세속화의 상황에서 신앙 혹은 기독교는 일종의 존재위기에 직면하며 주변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든가 아니면 세속화의 상황에서 다시 신앙과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든가 어떤 하나의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내달 13일은 지방자치선거가 있는 날이다.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는 광역 시, 군, 구, 기초 읍, 면, 동 각 단위별로 의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을 포함하여 한번에 네명을 투표로 뽑게 된다. 이미 몇주전부터 교회 교역자나 구역 책임자들은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기에 바쁘다. 원래 지방자치야말로 말 그대로 풀뿌리정치다.

거창한 중앙정치무대의 정치가 아니라 실제로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다양한 생활상의 현안을 놓고 씨름하는 생활정치의 장이 바로 지방의회, 지방자치단체다. 과연 한국교회는 이러한 지방자치라는 현실을 교회의 선교적 맥락의 하나로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교회가 싫든 좋든 후보로 나선 사람들에게 교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각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구역조직은 이들 후보자들에겐 가장 탐나는 선거운동의 조직적 거점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행정상의 조직인 통, 반조직이나 반상회, 아파트단지의 대표자회의, 부녀회와 같은 조직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나 여타 종교의 구역조직만큼 결속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연계망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 나선 사람들은 이같은 지역조직이나 등산모임, 테니스모임, 조기축구회, 마라톤클럽과 같은 지역 동호인 모임들을 순례한다.

또한 지역내에 있는 교회는 주말에 후보자들이 반드시 들러야할 선거운동의 건널목이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지방자치는 한국교회의 선교적 맥락속에서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 아닌가 한다.

앞서 말한 다양한 지역조직들이 나름대로 지역사회의 문제와 민원사항을 후보로 나선 사람들에게 주문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데에 반하여, 지역교회들은 대부분 후보자들의 인사에 약간 우쭐해 하기도 하고, 때론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할 뿐, 교회를 찾아오는 후보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보통 엉거주춤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인 듯 싶다.

때로는 지나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의식적으로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정교분리라는 명분하에 “교회는 정치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태도로 생활정치를 외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모두 하나같이 교회를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의 요충지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에 하나의 흥미로운 역설이다.

물론 지방자치가 다루는 우리 삶의 영역은 대부분 우리 삶의 물리적 현실과 관련된다. 지역의 환경문제, 교통문제, 복지문제, 문화시설, 지역경제 등과 같은 생활정치의 문제들은 모두 물리적인 삶의 문제일 뿐 지역주민의 영적 삶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보다 친환경적이고, 보다 나은 교통환경과 보다 나은 복지혜택과 보다 나은 문화시설과 보다 나은 지역경제가 보다 풍성한 영적 삶과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지는 아닐 터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교회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는 노인과 여성, 청소년들의 생활터전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들이야말로 바로 기초자치단체들이 다루는 핵심적인 사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들은 여전히 교회가 외면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일일까?

80년대부터 시민운동 안에서는 선거국면에서 시민운동의 향방을 놓고 공명선거론과 독자후보론이 끊임없는 논쟁을 이어왔다. 공명선거론은 실제 선거국면에 참여하기 보다는 심판자의 입장이나 제3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인데 반하여 독자후보론은 지방자치-생활정치의 세계에서 시민운동이 주민의 직접 참여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방자치의 범위를 떠난 보다 더 큰 정치의 영역에서 공명선거운동이 공허하게 여겨지고, 독자후보론이 비현실적으로 간주되었을 때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이 출현했다. 그러나 낙선운동은 다시 이것이 운동의 성격상 네거티브 운동일 뿐 적극적인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었고, 다시 시민운동은 시민참여론과 공명선거론으로 나뉘어 지방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주민참여가 효율적이려면 주민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직되어야 한다. 행정적인 수요를 위해서도 주민조직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공동체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지향한다. 근본적으로 구역조직이란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대한 목회적 배려와 지역사회 속에서 기독교신앙의 증거, 선교와 봉사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한 선교와 봉사의 내용 안에는 지역사회 안에 살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와 배려, 나눔, 환경보호 등과 같은 생활정치의 관심사들이 중첩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정황속에서 오늘 한국교회는 또다시 세속화의 질문앞에 마주선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계속 물러나 보다 순수한 영적인 삶의 영역안으로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선교의 맥락속에서 기독교적 참여의 의미를 추구할 것인가, 혹은 옆으로 물러나 심판자의 역할만을 자임하고 말 것인가? 지방선거는 역시 교회의 삶과는 무관한 세상의 정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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