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립다 ④
엄마가 그립다 ④
  • 박은자(동화작가)
  • 승인 2015.02.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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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영운 권사 이야기
▲ 박은자사모
지난 추석 기간에 늙은 어머니를 자식들이 버리는 이야기가 드라마로 방영 되었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 애썼던 어머니는 늙어서 아무 힘이 없고 병이 들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택시에 태워진 채 자식들 집을 전전했지만 어머니를 받아주는 자식이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늙고 병드신 어머니를 거부하는 자식들의 모습, 나는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엄마는 효부 중에 효부셨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와 엄마가 말다툼을 크게 하신 적이 있다. 서로 이혼까지 거론하면서 크게 싸우셨는데 이혼하자는 결론을 내 놓고는 아버지가 엄마한테 말씀하셨다. “이혼해도 당신이 우리 아버지한테 잘해 준 것은 절대로 잊지 않을게.”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버지가 절대로 잊지 못할 어머니의 효, 나는 오늘 할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할아버지는 중풍과 치매가 한꺼번에 오셨다. 자정 무렵에 밥 달라고 소리를 지르셨고, 똥을 싸면 벽에다 그림을 그리셨다. 그런데 치아가 좋으셨다. 위도 튼튼하셨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잘 잡수셨다. 문제는 입이 돌아가 밥을 입에 넣으면 씹기도 전에 흘러 내렸다.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이틀에 한 번 인절미를 하셨다. 찰밥을 해서 작은 방아에 콩콩 찧고, 동글동글하게 콩가루를 묻혀서 할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그렇게 입에 들어간 인절미는 흘리지 않고 잘 드셨다. 그뿐이 아니었다. 고기도 떨어지지 않았다. 장사를 하시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할아버지 고기와 과일과 과자와 사탕은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자식들에게는 할아버지가 드시는 것들이 모두 약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어느 날 잠시 정신이 돌아온 할아버지가 당신이 드실 것들을 손주들에게 주셨다. 손주들은 고개를 살래살래 내두르며 싫다고 말했다. 막내 동생은 할아버지 약이니까 할아버지 혼자 다 드시라고 말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자꾸 먹으라고 말했다. 막내 동생이 주춤주춤 할아버지가 주시는 것을 먹어보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할아버지 약, 참 맛있다!”
할아버지는 아주 많이 드셨다. 그래서 대변도 많이 보셨다. 아무리 자주 똥을 싸도, 그리고 아무리 많이 싸도 어머니는 상관하지 않고 할아버지께 먹을 것을 드렸다. 똥을 싼 것이야 빨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누워만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기쁨은 잡숫는 것이니 마음껏 잡숫게 해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똥을 싸실 때마다 어머니는 웃으셨다. 변을 보시지 못하시면 잡숫는 것이 다 살이 되어 걱정일 텐데 다행이도 변을 잘 보셔서 살이 안 되니 다행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며 똥을 싼 할아버지를 어린아이 목욕을 시키듯 씻겨 드렸다. 할아버지는 매일 세 번은 기본으로 똥을 싸셨고, 많이 싸실 때는 일곱 번도 싸셨다.

어머니가 극진히 할아버지 몸을 닦아 드리고, 방도 매일 청소를 했지만 할아버지 방은 언제나 냄새가 났다. 당시 미혼이었던 고모와 삼촌이 어쩌다 집에 오면 할아버지 방에 인사하러 들어갔다가 5분도 채 안되어 얼굴을 찌푸리며 나왔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틈틈이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살피시고 할아버지에게 말벗이 되어 드렸다.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잘해드린 것들 중에 최고는 밤마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할아버지와 놀아드렸다는 점이다.

저녁 설거지가 끝나면 어머니는 당연한 일인 듯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 가셨다. 할아버지에게 찬송가도 불러 드리고, 낮에 있었던 일도 이야기 해 드리고, 친척들 소식도 전해주고, 또 성경도 읽어 드렸다. 할아버지는 가끔 눈물을 철철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고는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끌어안고 한참을 같이 우셨다.
치매였던 할아버지가 엄마 앞에서만 온순하셨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가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다음에 꼭 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날마다 손가락을 걸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걸고는 웃으셨다.

어느 해인가 할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번 생신이 마지막 생신이 될 것 같아. 그러니 이번에 할아버지 생신을 최고로 잘해 드려야겠어.”
어머니는 한 달 전부터 할아버지 생신 준비를 시작하셨다. 김치를 종류별로 담고, 엿을 고고, 한과를 만드는 등 환갑잔치보다 더 성대하게 준비하셨다. 어머니가 만드는 여러 종류의 한과는 광 단지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어머니는 한 가지 음식이 만들어질 때마다 가장 먼저 할아버지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맛있게 잡숫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는 행복하게 웃으셨다. 할아버지 역시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할아버지 생신은 다음날로 다가왔다.
집안에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갖가지 전들이 부쳐지는데 전 역시 어머니는 할아버지 방으로 들고 들어 가셨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져다주시는 음식들을 참으로 맛나게 잡수셨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약밥이었다. 어머니는 약밥이 솔기를 기다리셨다가 어느 정도 굳어지자 예쁘게 썰어서 할아버지 방으로 들고 들어가셨다. 할아버지는 약밥도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는 생신날 할아버지가 입으실 한복도 마련해 놓으셨다.
어머니는 장롱에서 한복을 꺼내다가 불현 듯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할아버지 방으로 달려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외출하고 계시지 않았다. 분주하게 일을 돕던 동네 사람들도 이미 다 돌아간 후였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안고 기도하셨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 품에서 하나님 나라에 가셨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린 아이처럼 얼마나 행복하셨는지 어머니는 여러 번 이야기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7년 반을 치매와 중풍으로 어머니를 고생시키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안타까워 한 것은 이제 형편이 살만해서 여행도 보내드릴 수 있는데, 여행 한 번 못해 보고 방 안에서만 지내신 것을 마음 아파하셨다. 할아버지가 아프신 7년 반은 어머니에게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잔치음식으로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어머니의 안타까운 울음이 오래오래 계속 되었다.

참으로 곱고 아름다우셨던 나의 어머니 윤영운 권사님, 나는 할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셨던 어머니의 딸이다. 정말 어머니가 그립다. 아주 많이 그립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것들은 정말 많다.
어머니가 주신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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