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단상
부활절 단상
  • 한숭홍 박사 (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5.04.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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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부활절, 나는 바티칸에 있었다. 튀빙겐대학교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2주 동안 함께 여행하기로 하고 스위스를 거쳐 로마에 도착한 다음날 부활절을 맞이한 것이다. 정해져있는 지정석으로 한국 수녀가 안내를 해 주었는데, 추기경들 뒤에 앉게 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모습이 발코니에 등장하자 미사에 참석한 군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눌러 되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잠잠해지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수십만 명이 모인 성 베드로 광장에는 교황의 부활절 강복메시지(Urbi et Orbi)가 스피커를 타고 낭랑히 퍼져나갔다. 그 분위기에 나는 압도되었고, 경건한 신비를 몸으로 느꼈다. 우리 부부는 부활절 때면 가끔 그날의 부활절을 이야기하곤 한다.
    
2000년대 들어 기독교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교인수가 급감하자 한국교회는 위기감 극복을 위한 타개책의 일환으로 교회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며 교인들을 동원한 집회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활절 연합예배도 그러한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1947년 4월 6일 새벽 6시! ‘조선기독교연합회’(NCCK 전신)와 미군은 서울 남산공원에서 부활절 예배를 함께 드렸다.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있던 남산에서 일본의 사망권세를 깨고 부활한 한국이 일본을 패망시킨 태평양전쟁의 승리자 미군과 공동주최한 부활절 예배는 그 자체로 부활의 날을 기뻐하는 즐거운 축제였다. 한국교회사가들은 이때를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 연합예배로 기술한다.
    
“즐겁도다 이 날 세세에 할 말 사망권세 깨고 하늘이 열려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나와서 생명의 주 예수 찬송하도다.” 부활절 예배 때마다 가슴을 벅차게 했던 경건한 신비와 경외의 감정이 지금은 왜 무뎌졌는지, 부활절 연합예배에 대한 교인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교회의 대답이 기다려진다. 연합예배를 주최하는 기관에서는 기독교 언론매체와 일간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도하고 플래카드를 곳곳에 내걸기도 하며 교인들의 참여를 독려하지만 대다수 교인들은 방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금년 부활절 연합예배도 대형교회 목사들만의 잔치가 되겠네!”라는 다소 냉소적 정서가 지금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부활절 연합예배가 대형교회목사들과 기독교계 기관 대표들만의 연례행사(event)로 전락되면서 부활절은 분할절(分割節)로 되어가는 듯한 조짐도 보인다. 비록 교회의 현금(現金) 사정이 좋다고 하더라도 교인들의 헌금(獻金)을 이런데 투입하는 것이 연보(捐補)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지, 수만 명의 교인들을 동원한 행사에서 ‘교회 연합과 일치’, ‘남북통일’, ‘세계선교’, ‘정의와 평화’ 등등 거의 실현 불가능한, 단지 기독교 윤리학적 차원의 이념들에 불과한 이런 메시지들을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이 엄청난 비용을 치룬 행사에 어울리는 행동인지 되짚어볼 일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부활절 연합예배란 이름의 대중동원 운동을 연례행사로 지속해야 할지 여부를 진지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다.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도 대중을 동원한 집회나 행사는 대다수 국민을 짜증스럽게 한다. 북한의 군중집회나 매스게임 등의 행사들을 TV 뉴스시간에 접하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부활절 연합예배가 군중집회처럼 변질되어가고 있는 현실, 거기에서 예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을까? 부활절 연합예배의 무대에서보다는 부활의 기쁨을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며 조촐하게 드리는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부활한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자리가 엠마오 도상이다. 2015년 부활절, 엠마오 도상의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축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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