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9시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사업가 이모(44)씨와 그의 부인 임모(40)씨, 중학생 딸(15), 초등학생 딸(12)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씨는 한 때 거칠것없이 승승장구하던 '청년 사업가'였다. 카드회사에 다니던 그는 2001년 2월, 경매로 시장에 나온 청주의 한 주유소를 사들이며 사업가로 변신했다.
30살부터 적잖은 돈을 모으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 있던 주유소 1곳을 '직영관리' 형식으로 인수하며 한 단계 도약했다.
예의도 바르고 사교성이 좋았던 그는 한 봉사단체에 가입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기부활동에 참여했다. 이때부터 사회적 인맥을 본격적으로 넓혔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수년간 상승세를 그리던 그의 인생곡선은 갑자기 하양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는 주유소 옆에 주유소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경영상태가 하루하루 나빠지는 걸 고민하던 그는 주유소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이게 불행의 씨앗이 될줄은 몰랐다.
대출 만기일이 도래하면 지인과 가족에게 급전을 빌려 틀어막는 돌려막기가 이때부터 시작됐고, 빚을 빚으로 갚는 일이 반복됐다.
빚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 어느덧 수십억원에 달했다. 주유소 건물과 토지, 아파트에 근저당이 설정된 채권최고 금액만 25억원을 넘어섰다.
뾰족한 묘안을 찾지 못하던 그는 결국 위험한 결정을 하고 만다.
주유소를 담보로 친구에게 5억원을 사업투자금 명목으로 빌린 뒤 급전이 필요한 지인들에게 돈을 꿔주고 이자를 받는 일명 '사채놀이'에 손을 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돈버는 방법은 없었다. 돈을 빌려간 지인들은 원금은 커녕 이자도 갚지 않았고, 부도를 내고 잠적하는 일이 빈발했다.
경찰은 이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결정적 배경은 감당할 수 없는 부채와 빚 독촉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가 생전에 소유했던 주유소와 토지는 지난 8일 청주지방법원의 경매개시결정으로 조만간 강제 경매가 진행된다.
봉사단체 회원 A(56)씨는 "모임에서 이씨를 만나면 항상 빚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예의가 바르고 성실했던 그가 가족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주유소 경영과 사업에 실패하면서 빚진 돈만 5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며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가족과 함께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와 부인은 질소 가스 흡입 장치를 머리에 쓴 채 숨져 있었고, 두 딸은 방안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방에서 이씨와 부인, 큰 딸이 작성한 유서를 토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집에 외부인이 침입하거나 타살 흔적이 없는 점을 토대로 이들이 질소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도 의뢰했다.
청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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