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무화(無化)와 감성적 은유의 미학
> 김옥엽 시집. 파아란 울음의 부피의 시세계 5 <
실존의 무화(無化)와 감성적 은유의 미학
> 김옥엽 시집. 파아란 울음의 부피의 시세계 5 <
  • cwmonitor
  • 승인 2000.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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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하 (시인, 덕성여대 교수)


이러한 관념을 형상화한 빼어난 시 가운데 하나가 <파도Ⅳ>이며 격렬한 우수와 고독의 출렁거림 그리고 자기부정의 충돌을 독특한 화법으로 이미저리한 <파도Ⅱ>가 있다.

파도는/바람의 성육신(成肉身)이다.
(중략)
파도는/나그네의 가슴을 벗기는 바람의 묵시다//고독을 무너뜨린/수도자의 변명처럼 비겁한 울음이다//파도는/겁 없는 혼돈이다//지구의 한 쪽 끝을 피멍들이다/바다의 임종을 재촉하는/오오, 바람의 끝장이다
-파도Ⅱ (일부)


이만한 구절들을 건져 올릴 때에는 오랜 고요와 생각의 침잠이 있었을 것이고 자연과의 공명도 이뤄졌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몸을 입어 파도로 나타난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인간으로 온 것에 곧 비유하는 성육신(化身-incarnation)으로 표현한 것은 고도의 유추가 아니고 서는 할 수 없는 김옥엽 시의 백미다.

안개 빛 머리를 푼/어둠보다 짙은 함성//주갈 들린 가슴으로/맞닿은 하늘 가르다//스스로 떠나는 결단/흰 가로로 무너진다//바람을 타이르다/그리움은 목이 쉬고//수평을 건너가서/달려오는 저기 먼 곳//황홀히 떠나가다가/돌아눕는 바다여.

-파도Ⅳ (전문)


이 시도 역시 시조 형식을 취한 시이다. 여기서도 파도의 「함성」이 「흰 가루로 무너지는」 것이나 「그리움은 목이 쉬고」 「달려오는 저기 먼 곳」도 결국은 「황홀히 떠나가다가 돌아눕는 바다」로 나타난다.

모든 것이 무화(無化)된다. 곧 영원정신으로 통하는 외로움이며, 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고 광풍(狂風)> <지우기> 등에서는 더욱 극명해 진다.

지금 동해는/원시의 몸살로/파아랗게 달려오지만/경포의 침묵을 범람하지 못한다.//가장 가여운 흰 빛 하늘에서/쏟아지지 못하는 별들사이/저 혼자 뻗어 오른 수목들은/무엇을 기다려 푸른빛으로 서 있는가?

(중략)

동해는 포효하는 몸짓으로/매일 건너다 보았지만/거대한 분노로 달려와서/내 서러운 영혼을 부수어 나갔지만//나는 손바닥보다 큰 달을/은빛 수면 위에 받아 놓았을 뿐/허물 묻은 세월을 거역할 수 없어//찢어진 삶의 자락을/경포, 경포의 묵언(默言)앞에서/부지런히 기워 나가려 할 뿐이다
-鏡浦湖 (일부)

이 시는 월간문학에 발표하여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시로 자기 구원을 향한 내재적 몸부림을 뛰어난 은유로 환치시킨 수작이다.

「지금 동해는/원시의 몸살로/파아랗게 달려오지만/경포의 침묵을 범람하진 못한다」 라는 이 시의 전제인 경포호는 곧 김옥엽의 자아적 발견이다.

거기에 「쏟아지지 못하는 별들 사이/저 혼자 뻗어 오른 수목들은」 자아 속의 번뇌나 기쁨이나 말할 수 없는 고독이다.

그리하여 「찢어진 삶의 자락을/경포, 경포의 묵언(默言)앞에서/부지런히 기워나가려 할 뿐이다」 여기서 묵언이란 영원으로 통하는 정신의 나타남이다.

이것은 곧 외로움이며 내밀한 괴로움이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서의 진통이며 영원한 구원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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