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한 경찰권 남용에 대해 국가뿐만 아니라 경찰관 개인에게까지 손해배상책임을 지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부(부장판사 김기영)는 강모씨 등 6명이 정부와 최모 전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을 깨고 "국가와 최 전 과장이 강씨 등에게 2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쌍용자동차에선 지난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와 그 가족 등 2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시민들은 2012년 4월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한 뒤 고인을 애도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2013년 4월 서울 중구청은 교통 방해를 이유로 분향소를 철거했고 그 자리에 화단을 설치했다. 해고자들은 그 앞에 임시분향소를 만들어 추모를 이어갔다.
2013년 5월29일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꽃보다 집회' 행사를 하던 중 경찰과 충돌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행사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 대한문 앞에 조성한 화단 안쪽으로 들어가자 경찰이 이들의 진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물총을 쏜 일부 집회참가자를 향해 최루액을 분사하고, 물총 11개를 현장에서 압수했다. 최모 전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은 3차례에 걸쳐 해산명령을 내렸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이 화단 부근에서 경찰의 대응을 비판하는 등의 발언 위주로 집회를 진행하다가 끝이 났다.
강씨 등은 "최 전 과장의 지시를 받아 경찰들이 법률적인 근거 없이 집회장소인 화단 앞 공간을 점거하고, 최루액을 발사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최 전 과장과 국가를 상대로 1인당 400만원씩 모두 24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당시 경찰이 행사한 공권력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강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당시 집회 주최측이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집회 현수막을 설치하기 위해 화단 안으로 잠시 들어간 것 일 뿐"이라며 "집회 주최측이나 집회 참가자들이 화단을 훼손하기 위한 조직적인 준비나 시도를 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의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고, 집회 장소를 제한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집회의 조건부 허용에 해당한다"며 "경찰 등 공권력은 다른 중요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회의 장소를 제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단 앞에 경찰들을 배치한 최 전 과장의 조치는 그 목적이 화단의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도 내에서 예외적으로 행사됐어야 한다"며 "경찰이 집회장소인 화단 앞 공간을 점거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경찰과 집회참가자들의 대치 상황과 일부 참가자들의 충돌은 집회의 시작 단계에서 집회의 핵심적인 장소인 화단 앞을 미리 점거한 경찰의 행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만약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요구에 따라 화단 앞 점거를 풀었다면 갈등과 대치상황은 쉽게 해소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 전 과장의 대한문 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은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경찰권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 2조1항에 따라 공무원인 최 전 과장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강씨 등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최 전 과장은 집회 현장의 경찰책임자에게 요구되는 직무상 주의의무를 현저히 결여한 중과실이 있다. 최 전 과장 개인도 자신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강씨 등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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