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식통은 이어 "미국 측에서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일지 고민을 하다가 막판에 한국에서 따로 만찬 협의를 진행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만찬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적 관례에 비춰볼 때 양자회담을 하게 되면 오찬 또는 만찬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틸러슨 장관의 방한을 '귀빈 방한'으로 보고, 이에 맞춰 격(格)과 일정을 조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은 공식 방한임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만찬 협의를 위해 공식 만찬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에 들렀던 일본에서의 동선과도 확연하게 비교된다. 지난 22일 오후 10시께 일본에 도착한 그는 다음날 오후 미일 외무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접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의 만찬 일정을 차례로 소화했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틸러슨이 공식 방한에서 만찬을 하지 않은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틸러슨 방한은 이번 한·중·일 순방 일정에서 중요도가 낮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현 정부와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회담 후 만찬을 한다는 것은 미래를 약속한다는 의미인데 현재의 한국 정부와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형식만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만찬 요청을 거절한 틸러슨 장관이 한국에서 누구를 만날지도 주목된다. 당초 그는 한국에서 정치권 인사를 만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미국 군 당국과의 만찬 협의를 진행할 거라는 관측이 제시된다. 오는 18일 곧바로 중국으로 넘어가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날 예정인 만큼 미국 자체적으로 사드 관련 협상 전략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틸러슨 장관이 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정권이 바뀌더라도 위안부 합의를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한다고, 일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은 한국의 차기 정부에 '사드 합의'를 이행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으로도 해석된다"며 "사드 문제 또한 미국 정부가 결정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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