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역량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역량
  • cwmonitor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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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양 식 목사
보냄과 세움 대표
예수랑교회 담임목사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기독교문화학과 겸임교수


내가 문화선교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나는 세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했다. 나에게 쏟아부어지는 비난은 이런 것이었다. “너는 왜 복음이 아니고 문화냐? 문화같은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사역을 한다니 너는 복음적인 사람이 아니라 세상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문화의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것이 세상적이라니 그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고, 어느 때는 “내가 정말 세상적인 일을 하는가”하고 의심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의 시대라는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지면서 우리의 교회들은 갑자기 문화의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격세지감이 있다. 문화를 강조하는 교회나 문화를 애써 외면하는 교회나 문화에 얽매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에서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든 혹은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든 문화에 대한 관심 자체에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문화에 관한 문제 의식이나 그로 인해 나타나는 행태에 대해서는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문화 다루기나 문화 대하기가 기독교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것을 넘어서 일반 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많은 문화적 이슈와 현상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전생 및 환생, 인간 복제, 동성애, 트랜스 젠더, 붉은 악마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다루고 대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인은 더욱 편협하다는 이미지를 스스로 생산해 내고 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의 이미지는 더욱 더 부정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 접해서 문화적 역량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문화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폐적인 성격을 띤다면 그의 문화적 역량은 낮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문화를 읽어내고 평가하는 그리스도인의 활동이 일반 사회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의 문화적 역량은 높게 평가될 것이다.

문화적 역량은 교리적 차원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깊이 있는 문화비평을 통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고 선택하도록 이끄는 능력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피상적인 문화분석에 그침으로써 폭 좁은 한계를 드러낼 것이 아니라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안목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일본 만화 영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상반된 입장을 접했다. 하나는 일본 귀신들이 몽땅 등장하여 어린이들에게 어둡고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보아서는 안될 영화라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도인이 꼭 보도록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는 입장이다. 양자의 입장은 볼만한 영화로 추천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측면에서는 상반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양자의 입장은 단순히 볼 것이냐 말 것이냐 만을 놓고 상반된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붙잡고 있는 문제 의식과 가치관의 차이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는 보여줄 수도 있고 안 보여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보여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해 줄 것이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내가 주목한 것은 일본 귀신이 몽땅 등장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신의 세계에 빠져들어 갔다가 본래의 자기 이름을 잊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세계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실은 온갖 사탄적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내가 본래 속해 있는 세계로 돌아오려면 자기 정체성을 절대로 잊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도 적용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인생 문제다.

영화 감독은 기독교인을 향해서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따라서 관객은 어떤 것에 주목하여 감독이 던지는 문제 의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입각하여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

다른 길을 간다고 그것을 틀렸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나의 길이 옳다고 증명되지는 않는다. 내가 찾은 길이 생명의 길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설득해서 선택하도록 도울 수 있는 논리가 중요하다.

이런 일은 얼마나 큰 문화적 역량으로 감당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역량은 단순히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인 문화의 침입을 경고하여 기독교적 문화를 보존하는 노력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대중 문화 현실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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